한동안 예술을 운운하던 패션계의 관심이 온통 테크놀로지에 쏠려 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넘어 당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패션으로 돌변한 테크놀로지, 혹은 테크놀로지를 등에 업고 더욱 친절해진 하이패션에 대한 견문록.
지난 2월 밀라노에서 열린 돌체&가바나의 F/W 컬렉션 현장. 눈길을 끈 건 레이스뷔스티에 톱과 레오퍼드 원피스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모델들의 목에 걸린 동전 지갑이 달린 아이폰 케이스! 이렇듯 테크놀로지에 힘입어 탄생한 오늘날의 대표적인 테크-패션의 전유물인 아이폰 케이스는 각 하이패션 브랜드들이 취급하는 가죽 액세서리 라인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중이다. 이미 루이 비통, 까르띠에, 구찌, 에르메스, 니나리치, 다이앤 폰 퍼스텐버그 등에서 브랜드를 대표하는 로고와 패턴, 소재 등으로 꾸민 아이폰 케이스를 출시했으며, 이브 생 로랑 역시 이번 시즌 CHYC(시크) 라인을 통해 마우스패드, 어댑터 케이스, 아이폰 케이스를 비롯해 아이패드 케이스를 다양한 색상으로 선보일 예정이라니 그 열기가 뜨겁다.
사실 패션계가 하이 테크놀로지를 신개념의 마케팅 수단으로 삼은 것은 이제 시험의단계를 넘어섰다. 우선 당신의 삶에 불어닥친 변화를 짚어보자. 3D를 넘어 4D 영화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트위터를 통해 애인이나 가족보다 더 속속들이 다른 이의 취향을 공유하며, 회사에 출근하듯 온라인 쇼핑을 즐기고 있지 않나. 그러니 이런 이들에겐 ‘쌍방향(Interactive)’ 과 ‘실시간(Real Time)’이 생명인 디지털 세상처럼 패션도 그때그때 반응해줘야 제맛! 일례로 지난봄 디젤은 ‘Be Stupid’라는 디지털 캠페인을 선보였는데, 전 세계의 디젤 마니아 1백 명이 출연하는 인터랙티브 비디오 카탈로그인 ‘A Hundred Lovers’의 영상을 보다가 그들이 입은 아이템을 살펴보고 바로 온라인 쇼핑을 할 수 있다. 더구나 각 인물의 트위터나 페이스북으로도 연동되어 개개인의 생각과 취향을 엿볼 수도 있으니 오늘날 패션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은 옷이나 가방뿐만이 아니다. 디젤 아시아 퍼시픽의 마케팅팀장 페데리코 탕은 “오늘날 패션이 ‘콘텐츠’를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디지털 마케팅을 통해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에서 사람들이 원하고 느끼는 바를 손쉽게 감지할 수 있다고. 한편 휴고 보스의 커뮤니케이션팀장인 훼르디스케텐바흐는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 고객에게 보다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미디어에 적합한 새로운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휴고 보스는 유튜브에 TV 채널을 제작해 본사 구석구석을 취재하고 광고 촬영장 스케치를 담은 동영상 등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소셜 네트워킹 미디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2009년부터 온라인 전담 PR팀을 신설한 랄프 로렌은 지난해 럭비 라인에 이어 올해 로렌 바이 랄프 로렌의 첫 온라인 패션쇼를 홈페이지에서 열었다. 여기엔 유명 패션 에디터들의 해설이 라이브로 곁들여지기도. 또한 지난 9월에는 마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나온 스크린 쇼윈도를 연상시키는 24시간 인터랙티브 스토어 윈도라는 터치스크린을 뉴욕과 런던의 플래그십매장 쇼윈도에 설치해 행인들이 밖에서 US오픈 윔블던 관련 제품을 보고 바로 구매예약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럼 그 결과는? 특히 입소문에 민감한 젊은 층에게 효과가 있었으며 럭비 라인의 경우 패션 블로거나 트위터를 통해 완판된 아이템이 수두룩하다고. 한편 D&G는 온라인 스토어의1주년을 맞이해 아이패드 사용자들도 모든 기능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업데이트했으며, 버버리 프로섬은 지난 6월 치러진 2011 S/S남성복 컬렉션을 live.burberry.com에서 실시간으로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쇼 직후부터 1주일간 아우터와 액세서리를 선주문 받았다. 즉, 프레스나 바이어 혹은 VVIP 고객이 아니어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의 이점만 잘 활용한다면 4개월 전에 미리 따끈따끈한 신제품을 품에 안을 수 있는 것!
국내의 경우, 얼마 전 무이 갤러리에서 열린 셀린의 F/W 프레젠테이션 현장에는 피비 파일로의 제안으로 파워 블로거 15명이 초대되었다. 그리고 국내 브랜드 시스템이연 사운드 아트 파티에선 QR 코드가 프린트된 티셔츠를 나눠주었는데, 아이폰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 코드를 스캔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파티를 위해 제작된 다양한 비주얼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테크-패션의 모습은 어떨까. 지난 제52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영국 여가수 이모겐 힙이 입은 LED 칼라가 달린 드레스를 떠올려보자. 펜디가 테크놀로지 디자이너 모리츠 발데마이어와 협업한 투명한 펜디의 클러치 안에는 아이팟이 들어 있었고, 트위터를 통해 팬들이 실시간으로 전송한 텍스트는 LED칼라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테크놀로지와 패션이 만나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유기적인 디자인이라니 다음 단계는 당신의 상상에 맡기겠다. 어쨌든 분명한 건 패션의 또 다른 신세기가 열리고 있다는 사실. 그러니 얼마든지 느끼고, 상상하고, 즐겨라! 진보하는 기술과 진화하는 패션의 수혜자는 결국 당신이니까.
- 에디터
- 박연경
- 기타
- PHOTOS: COURTESY OF CARTIER, GUCCI, DOLCE&GABBANA, D&G, HERMES, DIESEL, HUGO BOSS, FENDI, SYSTEM, DV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