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VS. 최고 (나플라, 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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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미더머니 777>의 우승자와 준우승자, 최고 옆에 또 최고. 래퍼 나플라와 루피는 이 왁자지껄한 쇼에 동행하기 전부터 랩으로 물었다. ‘이렇게 잘하는 한국인은 처음이지?’

나플라가 입은 흰 티셔츠와 니트 베스트는 챈스챈스, 마스크는 구찌, 반지는 보테가 베네타 제품. 그릴즈와 목걸이는 아티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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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플라와 루피. 메킷레인(MKIT RAIN) 레코즈의 이 두 축은 얼마 전 종영한 Mnet <쇼미더머니 777>(이하 <쇼미더머니>)의 두 기둥이기도 했다. 선수가 입장하던 이 쇼의 첫 순간에도, 그리고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살아남은 자끼리 우승을 가리는 최후의 순간에도 둘은 나란히 서 있었다. 실력자인 두 친구가 <쇼미더머니> 출연을 결심한 이후 농담으로라도 ‘우리 둘이 나중에 파이널에서 경쟁자로 붙을 수도 있겠다’는 말을 나눈 적은 없는지 묻자, 나플라가 농담의 기색이 전혀 없는 얼굴로 말했다. “그러려고 방송 출연한 거예요. 그게 우리 목표였어요. 그럼 누가 우승하든 메킷레인의 승리니까.” 우탱클랜을 오마주한 곡 ‘Wu’에서 남다른 ‘혀 튕김’으로 박자를 타며 등장한 나플라. 유튜브를 통해 ‘Gear 2’로 존재감을 알리면서 세련된 무드의 음악과 스타일을 선보인 루피. 2015년 이맘때쯤 LA에서 한국으로 온 둘은 각각 <ANGELS>와 <King Loopy> 등의 앨범과 싱글 곡들로 힙합 신의 한 지분을 차지했다. <더블유> 화보 촬영과 인터뷰는 <쇼미더머니> 마지막 방송인 파이널 경연을 보름 앞둔 날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들은 둘 중 누군가 꼭 우승해야 한다는 조바심을 내기보다 다가올 미래를 여유 있게 기다렸던 듯하다. 나플라는 적지 않은 이들의 예상대로 이 다사다난한 쇼의 일곱 번째 우승자가 됐다. 루피는 준우승자다. 너무 다른 목소리와 랩 스타일을 지닌 두 사람이지만, 메킷레인은 결국 승리했다.

루피가 입은 패딩 베스트는 프라다 제품. 듀랙, 터틀넥 톱은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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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촬영을 위해 불이 타오르고, 호스 물 때문에 바닥은 흥건하다. 카메라 앞에서의 모습처럼 나플라와 루피는 물불 가리지 않는 자들인가?

루피 물불을 가리는 편이다, 매우.
나플라 음악을 직업으로 삼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

지금은 <쇼미더머니> 방송을 2회 남겨둔 시점이다. 요즘 컨디션과 기분이 어떤가?

나플라 체력적으로 힘든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들고 바쁜 부분이 크다.
루피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닌데 기침과 코막힘을 달고 산다. 압박감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나날이라 딱히 무슨 일이 없어도 피곤하달까? 근데 <쇼미더머니>에 나와 많이 알려진 이후 가까운 사람들이 기뻐한다. 그 점이 좋다.

<쇼미더머니>는 래퍼 개인의 무대로 평가받거나 팀을 지어 배틀을 벌이기도 하는 등 여러 미션을 거치며 살아남아야 하는 구조다. 기존에 하던 랩 벌스들을 비롯해 사전에 연습하고 준비해둔 총알, 혹은 때마다 주어지는 상황과 미션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능력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

루피 전자 쪽이다. 회를 거듭할수록 몸도 뇌도 그 환경에 익숙해지긴 하지만, 경연이라는 시스템에 적응하기도 전에 미션을 치르고 이겨야 한다. 그것들은 모두 기존에 다져놓은 연습과 준비를 통해서만 가능했다. 1차, 2차, 3차…로 갈 때마다 한 번 써먹은 벌스는 내 리스트에서 지우는 거다. 누군가와 그 자리에서 재대결을 해야 하는 일도 생기는데, 그런 상황에서 순발력만으로 이기긴 힘들다.
나플라 나도 루피 형 덕에 좀 더 준비를 철저히 했다. 우선 처음에는 4차까지 쓸 만한 랩을 미리 준비해뒀다. 내 총알을 기본적으로 10개 정도는 가진 상태에서 아무 비트나 나오면 그에 맞춰 골라 할 수 있게끔. <쇼미더머니>를 시작하기 전부터 루피 형이 이끌어 아예 스케줄을 잡고서 같이 훈련했고, 준비해둔 총알은 언제 꺼내 쓸지 모르니까 방송을 시작한 후에도 계속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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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쇼에 임해보니 가장 크게 느끼는 점이 뭔가?

루피 대한민국에서 힙합을…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말은 빼겠다. 그 모든 걸 떠나 우리가 몸담고 있는 분야를 대중적으로 알리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체감한다. 그전에는 120%를 쏟아내 앨범을 발표해도 기대만큼 안 됐는데, 최근에는 스케줄에 쫓기면서 작업한 곡도 음원 차트 1위를 하더라. 회의감과 허탈감이 컸다. <쇼미더머니>를 택한 걸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다. 한국에서 축구가 인기를 끌기까지 박지성이 있었고, 피겨 스케이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김연아가 필요했듯이, 우리도 <쇼미더머니>가 필요했구나 싶다.
나플라 나는 순발력을 발휘하는 정도나 긴장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능력이 확실히 레벨업했다. 2주 안에 무조건 새 곡을 뽑아야 하고, 큰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앞으로 가는 일을 반복하니까 발전하는 면이 있다. 또 한국에 래퍼가 정말 많다는 것도 확인하고.

2016년 봄에도 두 사람이 같이 <더블유> 지면에 등장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온 친구들’이라는 제목의 작은 인터뷰였는데 그때 촬영한 사진이 인터넷에 많이 돌아다닌다.

나플라 그때는 오늘처럼 화려한 의상들 없었다. 역시 <쇼미더머니>의 파급력이 대단해.
루피 맞아, 그 촬영 때는 이런 옷 입지도 못 했어.

그 무렵에는 화창한 LA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느낀 강추위 때문에 컨디션도 기분도 안 좋은 상태를 담은 루피의 곡까지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한국에 온 이후 맞이하는 네 번째 겨울인데, 이제 적응 좀 됐나?

나플라 벌써? 나 아직도 적응 못 했는데?
루피 미국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들에겐 겁 좀 준다. ‘네가 한국의 추위를 알아?’

당신들에게는 늘 ‘LA’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LA 말고 서울은 어떤 도시 같은가?
루피 슬픈 도시. 옆 사람이나 주변을 의식하는 문화가 있잖나. 그게 없어지지 않는 한 계속 슬픈 도시일 것 같다.
나플라 일단 직장인의 생활만 들어봐도 쉴 틈을 안 주는 듯하다. 그러다 보니 놀기 위해 클럽이나 다른 놀 만한 장소를 찾아가고, 힐링하기 위해 일부러 휴양지로 여행을 가야 한다. 멈춤과 느긋함이 없는 느낌이다.

조기석_루플라데이터_CMYK_7 복사

LA에서는 얼마나 살았나?
나플라 미국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다가 한국에 들어왔다.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미국으로 가 계속 살았고, 딱 3년 전 루피 형과 같이 한국에 왔다.
루피 나는 군 제대하고 2010년경 유학차 미국에 갔다. 한국에서 학창 시절 다 보내고 나이 들어 간 거다. 부모님 뜻에 따라 취업을 위해 비즈니스를 공부할 목적이었다.

비즈니스 공부하라고 유학 보내놨더니 힙합에 빠져서….
루피 사실 스무 살 때 음악을 취미로 좀 하다가 관두고 보통 대학생들처럼 살았다. 내가 미국에 갔을 때가 마침 집에서도 혼자 음악을 뚝딱 만드는 게 쉬워진 시기였다. 아이폰이 널리 퍼졌고, 다른 테크놀로지도 발달하면서. 거기에 미국인을 보니 나이가 많든 적든, 어떤 직업을 가졌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남 눈치 안 보고 즐기면서 살더라. 그런 영향으로 다시 집에서 음악을 시도해봤다.

나플라에게 어릴 적 서울에서의 마지막 인상은 어떤 장면으로 남아 있나?

나플라 공항에서 할아버지가 시계를 선물해주셨다. 위니더 푸 캐릭터 시계였다. 그때는 어려서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싫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에서 보낸 삶이 고맙다. 덕분에 음악적 경험이나 관점의 스펙트럼이 넓어졌을 거다.

외국에서 보낸 유년기에 외로움은 크지 않았나?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음악에 담곤 했다거나.

나플라 다인종이 사는 LA여서 그런지 인종 차별 같은 걸 당해본 기억은 없다. 아시안끼리 잘 뭉치기도 하고. 가사에 가끔은 ‘옐로’나 ‘원숭이띠’ 같은 단어를 넣어 필요에 따라 내가 아시안임을 어필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 프린트 셔츠는 베트멍 by 네타포르테, 체인 목걸이는 식스앤힐 제품. 발라클라바, 터틀넥 톱은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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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에서 두 사람은 어떻게 운명적으로 만났나? 서로 비밀도 없는 솔메이트처럼 보인다.
루피 한인타운의 카페 비슷한 공간에서 작은 공연이 열렸다. 나와 나플라가 게스트로 참여했다. 그전부터 나플라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나이 차이가 좀 나다 보니 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직접 랩 하는 걸 보고 잘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 우리는 쿨한 관계다. 늘 붙어 있는 건 아니지만 이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한다.
나플라 굳이 뭐 비밀을 공유하려고 들진 않는다. 하지만 형은 모든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다.

아마추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시절, 처음 랩이라는 걸 시도했을 때가 기억나나?

나플라 6학년, 7학년 정도였을 거다. 사촌 누나와 노래방에 갔는데 엠씨몽의 ‘l Love U Oh Thank U’를 부르겠다면서 나보고 랩 파트를 하랬다. 그전부터 랩 음악을 듣긴 했지만 뱉어본 경험은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루피 고등학생 때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맞이 장기자랑이 있었다. 원래는 춤을 추려고 했는데, 성당 친구 중 힙합 동아리에서 랩 하는 친구로 인해 처음 랩을 하게 됐다. 그 친구가 있는 동아리에서 한 학년 위의 부장이 바로 그레이 형이었다. 친구한테 랩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물었더니 우선 가사를 직접 써야 한다더라. ‘와, 래퍼들은 가사를 직접 써?’ 했던 기억이 난다.

랩 외에 자신 있는 것은?
나플라 배달 음식을 잘 고른다. 배달 음식은 맛이 별로 없거나 이상하기 쉬운데, 희한하게 늘 안정적인 선택을 한다. 이거 제법 괜찮은 장기 같다. 루피 형은 축구를 잘한다.
루피 어릴 때 축구를 좀 했다. 포지션은 윙이었다. 레알 마드리드를 좋아했는데 호날두가 이적하고 나서는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고, 모드리치라는 선수를 아주 좋아한다.

조기석_루플라데이터_CMYK_8 복사

당신들이 꿈꾸는 아티스트로서의 모습은 뭔가?

루피 감추고 싶은 부분까지 인정하고 드러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고 싶다. 내가 남과 다르기 위해선 가장 나다워야 한다. 그러려면 나를 인정하고,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스스로 부정하고 싶은 내 모습이 많아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니까 자꾸 내가 아닌 다른 것이 되려고 하는 면도 있다. 아티스트 중에서도 음악 하는 사람으로서 말하자면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인지, 그걸 음악에 잘 표현했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매일 다른 기분을 느끼며 흘러가는 삶을 음악으로 담아내고 싶다.
나플라 내 자신을 찾는 것. 예술 하는 사람에겐 그것이 가장 찾아야 할 답이고, 그것을 찾은 후에야 자기 예술 세계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더 찾아야 한다. 지금은 내 무드에 따라 이런 것도 저런 것도 다 하는데, 그러면서 슬슬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추려지겠지. 패션이든 음악이든 추리고 추리면서 나를 조금씩 완성해가는 단계다.

붐뱁을 하면서 트랩도 잘하고, 이런 것과 저런 것을 다 해낼 수 있고. 나플라의 말을 들으니 학교 다닐 때 공부 잘하는 애들이 법대 가도 되고 의대 가도 됐던 상황이 떠오르는데?

나플라 법대나 의대 둘 다 갈 수 있는 여건이라면, 이왕이면 돈 잘 버는 쪽으로 가야 좋겠지.

돈을 많이 벌면 사고 싶은 거나 하고 싶은 게 뭔가?

나플라 내 체크 리스트 중 첫 번째는 한국과 미국 왕복할 때 비즈니스 클래스를 타는 거다. 아직 타본 적이 없다.
루피 돈 걱정 하는 가까운 사람들, 걱정을 안 시키고 싶다. 내 돈으로 전 인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어도 주변인을 도울 수는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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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딩 베스트, 버킷햇, 팬츠는 프라다, 흰색 에어포스 원은 나이키 제품. 주얼리는 아티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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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플라와 루피, 합쳐서 일명 ‘루플라’로 불리는 메킷레인 레이블의 두 축이다. 루피에게 나플라란?

루피 선생님 같은 존재. 랩뿐 아니라 살아가는 부분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체계적인 친구.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관계처럼 동기를 부여시켜주는 대상이기도 하다. 또 미국에서 한국으로 같이 들어오자고 권유한 나는 그에게 늘 책임감을 느낀다.

나플라에게 루피는?

나플라 형이 나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 친형이자 멘토 같은 존재다. 생각하는 방식이 다른 면도 있어서 음악 작업이나 회사 경영 문제를 두고 서로가 서로에게 배운다. 사회적인 측면에서는 형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형은 사람을 잘 본다. 나는 귀도 얇고 사람 보는 눈도 없거든.

마지막으로, 메킷레인에게 <쇼미더머니>란?

나플라 일차원적으로, 우리 이름을 알릴 수 있는 플랫폼. 그거 생각하고 선택한 길이다.
루피 많은 이들이 이제 우리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고 여길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일 것이다. 그러니까 <쇼미더머니>란 우리에게 진정한 의미의 ‘시작’이 아닐까?

피처 에디터
권은경
패션 에디터
이예지
포토그래퍼
조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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