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 (김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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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에선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김용지가 입을 열었다. 신비로운 얼굴로 <미스터 션샤인>에서 조용히 존재하던, 그래서 더욱 궁금했던 그 여자.

실크 소재의 파자마 스타일 톱과 팬츠, 울 코트는 모두 보테가 베네타 제품. 쿠션과 리빙 오브제는 모두 에이치앤엠 홈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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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로운 느낌의 마스크를 지녔다. 당신이 혼혈 인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어릴 적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어릴 때는 지금보다 피부가 더 하얗고 눈과 머리도 아예 갈색이어서 튀었다. 하나 있는 언니는 또 나와 다르게 동양적 외모다.

외모에 대한 언급 때문에 어린 시절 상처를 많이 받았나? 아니, 개의치 않았다. 무시했다. 그때는 부모님부터 내 외모를 두고 장난스럽게 놀리기도 해서 덤덤해진 것 같다.

얼마 전 종영한 tvN <미스터 션샤인>의 호타루는 벙어리 설정에다 타로 점괘를 보는 묘령의 여인이어서 더욱 신비로웠다. 타로 점을 본 적 있나? 원래 관심이 없었는데 역할 때문에 점을 많이 보러 다녔다. 타로 점 봐주는 사람마다 점괘를 보는 방식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달라서 그런 걸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타로 카드를 집고 펼치는 제스처를 능숙하게 하려고 많이 연습했다.

목소리가 조곤조곤하지만 밝고 명랑한 느낌이다. 호타루는 조용하고, 표정이 없고, 그림자 같은 인물이었는데 김용지는 표정이 풍부한가? 매우 풍부하다(웃음). 친구들이 나에게 표정을 좀 줄여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잘 드러나고, 감정 표현이 확실한 편이다.

감정이 확연히 드러나는 타입이라면 연기할 때 말고 최근에 운 적 있나? <미스터 션샤인> 후반에 애신(김태리)이 유진 초이(이병헌)를 향해 “최유진!”이라고 부를 때. 시청자로서 드라마를 보다가 울음이 터졌다. 그 장면에서 어떻게 안 울 수가 있지? 축구 경기 시작 부분에서 태극기가 펼쳐지면서 애국가가 흐를 때,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볼 때도 울컥한다.

WK1811-김용지 수정2

당신은 주로 구동매(유연석)와 함께 등장했다. 과거 구동매가 호타루를 살려주고 거둔 셈이라 호타루에게 동매는 은인이면서 가족이고, 사모하는 대상 같기도 했다. 호타루 캐릭터에서 마음에 드는 점은 뭐였나? 의리가 있다는 것. 목숨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울기보다는 물기를 택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결국 애신을 지키려는 동매에게 냉정하게 버림받는다. 그 때문에 드라마 후반으로 갈수록 호타루의 가슴이 저릿했을 듯하다. 그런 감정을 느끼는 순간이 실제 삶에도 있었나? 생각만 해도 가슴 아프고, 내가 대신 죽을 수 있겠다 싶은 존재가 나에게도 있다. 바로 우리 언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유학 가서 아직도 외국에 산다.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서 그런지 사이가 각별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타인을 대하거나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채워가는 데 힘이 되는 사람이다. 내가 멘탈이 강한 편인데 그렇게 되기까지 언니의 도움이 컸다.

모델로 활동하면서 주로 사진 촬영을 했다. 영상물로는 지코, 크러쉬, 사우스클럽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경험이 있고. 사진과 영상 중 어느 쪽을 더 선호하나? 지금은 영상이 더 좋다. 성취감의 농도가 다르다. 모델은 주로 옷이나 물건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진 촬영을 한다. 영상을 찍는다는 건 그 인물로서 내가 돋보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더 힘든 미션이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정극 연기도, 촬영장 경험도, 모든 게 다 처음이어서 더 어려웠다. 심지어 말을 못 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드레이핑이 우아한 롱 케이프, 터틀넥 톱과 팬츠는 모두 발렌티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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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준비하나? 울어야 하는 상황에서 ‘나 꼭 울어야 돼’라고 생각하면 울음이 안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슬픈 생각으로 집중해보려 해도 그 순간뿐이지 잘 안 되고. 난 상대 인물에게 편지를 쓴다. 예를 들어 “미안해”라고 말해야 하는 경우, 미안함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않나? 그러니까 왜,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 미안하다는 말이 나오는지 쭉 편지를 써보는 거다. <미스터 션샤인>의 대본에도 대본상에 표현되지 않은 대사의 감정이 어떠한지를 깨알같이 적어놨다.

납득이 되는 연기를 위해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 같다. 그럼 작품 하나를 마치니 아쉬운 점이나 보강하고 싶은 점이 생겼나? 말하는 법과 듣는 법을 좀 더 익히고 싶다. 내 대사를 하는 데 급급해서 상대의 말을 잘 못 들을 때가 있다.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잘 들어야 내가 왜 내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는데, 대본에 쓰여 있는 문장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하면 잘 안 된다.

그래서 ‘연기는 결국 리액션’이라는 말이 있나 보다. 그간 본 많은 작품 속의 연기 중에 즐겨찾기 해놓고 싶은 것들은 뭔가? <파이트 클럽>의 브래드 피트, <레옹>과 <블랙 스완>의 나탈리 포트먼, <레퀴엠>의 남자 주인공, <헤드윅>의 존 캐머런 미첼, <물랑루즈>의 니콜 키드먼! 이 영화들을 처음 봤을 때는 연기를 향한 마음이 특별히 생기지 않았을 시기다. 관객 입장에서 인상적인 인물들이었다.

편애하는 장르가 있나? 왠지 무난한 로맨틱 코미디물은 잘 당기지 않고, 색깔이 진한 영화를 선호한다. 스토리나 캐릭터에 사연이 깊거나, 비주얼적으로 미장센이 훌륭하거나, 색감이 독특한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라스 폰 트리에의 <멜랑콜리아>와 자비에 돌란의 영화들이다. 최근엔 <레이디 버드>를 아주 재밌게 봤다. 넷플릭스 시리즈 중에서는 <블랙미러>를 아낀다.

모델 출신이다 보니 김용지의 외모가 풍기는 이미지와 스타일에 관심 갖는 사람도 많다. 옷장에는 주로 어떤 옷이 있나? 빈티지가 많다. 온라인 숍을 통해서도 많이 사고, 동묘시장에 가거나 해외에 나갔을 때 많이 구입한다.

플레어 장식 울 코트와 볼륨감이 돋보이는 후드 장식은 발렌티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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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과 방에 물건이 많은 편인가? 거의 맥시멀리스트 수준이다 (웃음). 내가 사는 것도 있지만 하는 일 때문에 주변에서 뭘 많이 받기도 하니까. 그런데 최근 <심플라이프>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았다. 넷플릭스 다큐 <미니멀리즘-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뜻깊었고. 물건을 많이 지니고 사는 건 환경 문제와도 연결되는데, 그걸 깨달아도 실천하는 게 참 쉽지 않다. 10월에 플리마켓을 통해 내 물건을 많이 정리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차차 미니멀리스트가 될 거지만 현재는 준 맥시멀리스트. 김용지라는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키워드로 그 밖의 명사와 형용사를 꼽아본다면? 개 어멈, 테니스, B형, 대담함.

대담함! 그 성격으로 인한 장단점은 뭔가? 단점이 있다면 직설적이라는 것. 친구나 가족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겠지. 장점은 할 말, 못 할 말, 다 할 수 있다는 것(웃음). 이건 사회생활할 때 좋게 작용하는 것 같다. 너무 눈치를 본다거나 남의 이야기에 휘둘려서 남의 일이 내 이야기가 되는 경우는 없는 편이다. 물론 남의 말에 동의하고 공감할 수는 있지만, 다른 이의 의견과 사상 때문에 내가 흔들리진 않는다.

최근 다른 이의 이야기와 내 마음이 어긋나는 경우는 없었나? 아, 있다. 이번엔 남의 이야기에 서서히 내 마음이 바뀐 경우다. 첫째 강아지가 많이 짖는 편이다. 남들이 그게 내가 많이 받아줘서 그런 거라고 할 때는 믿지 않았다. 근데 그런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지켜보니 강아지가 그런 건 다 나 때문인게 맞는 것 같더라. 내가 일이 없을 때 외출하는 가장 큰 이유가 우리 강아지들 산책시키기 위해서다. 산책 후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신인 배우이자 개 어멈인 김용지는 멘탈이 강하고, 대담하며, 사실은 잘 웃고 운다. 과거보다 지금이 더 유명하고, 지금보다 앞으로 더 유명해질 거다. 더욱 알려지면서 닥칠 부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상상해본 적 있나? 좀 더 공적인 사람이 되는 과정에서 내가 원치 않는 피드백과 생각지 못한 칭찬을 받기도 한다. 그게 만약 우리 사회 문화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모든 걸 다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다만 부정적인 말은 나보다 우리 부모님이 듣고 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연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2018년의 김용지에게 칭찬을 해준다면? 가장 칭찬하고 싶은 점은 다급하지 않게 천천히 걸었다는 것. 연초에 내가 그럴 수 있기를 바랐는데 정말 그랬다.

피처 에디터
권은경
패션 에디터
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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