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이라는 신세계

이채민

10년 전 중국을 주목하던 사람들의 시선이 지금 머무는 곳은 베트남이다. 성장 가능성과 잠재력에서 부쩍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이 나라엔 어떤 특별함이 있을까?

베트남 나우

우선 2018년 베트남에 대해 좀 더 깊고 넓게 알고 싶어 현지 거주자에게 6개의 질문을 보냈다.

Blured Traffic Moves Around Roundabout, Ho Chi Minh City, Vietnam
2018년 한국의 트렌드 키워드로는 #워라벨, #소확행, #페미니즘을 꼽을 수 있다. 베트남은 어떤가?
정리나(하노이 국가대학교 연구원) 지난해 하루도 빠짐없이 들은 단어는 페이스북의 체크인 기능을 의미하는 #체크인이었다. 페이스북은 베트남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SNS다. 같은 곳을 방문한 친구들과 공감대를 나누거나 은근한 자랑 용도로 쓰이는 #체크인은 업주들에게 특히 중요해서 포스팅 후에 직원에게 보여주면 할인해준다거나, 인테리어에 신경 써서 보다 많은 이들이 체크인하러 오게 하는 등 새로운 트렌드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처음엔 20대 위주의 트렌드로 보였지만 요즘엔 주변의 모든 사람이 #체크인을 하고 있다.

지금 베트남 2030 세대의 관심사에 대해 키워드를 중심으로 말해준다면?
젊은 세대를 포함, 기성 세대까지 영향을 끼친 키워드는 스타트업을 의미하는 #Kh i nghiê •p 일 것 같다. 미디어에 관련 기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2030 베트남 청년들이 대거 창업에 뛰어들었다. 베트남 곳곳에서 창업 관련 행사, 세미나가 개최되고, 코워킹 스페이스도 제법 생겼다. 몇 군데 구경하러 간 적이 있는데 밤낮없이 사람들로 북적이더라. 창업하는 법, 성공 비결, 자기계발서와 성공한 CEO의 성공담이 청년들 사이를 휩쓸고 있다.

부동산 시장도 궁금하다. 우리처럼 전월세 개념이 있는지, 부동산 열기가 과한지.
전세는 아무래도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존재하는 듯하다. 월세는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고 6개월분을 낸다. 현지 대학생들 자취방을 알아본 적이 있는데 한화로 10만~15만원 정도였다. 이 방을 2~3명이 함께 쓰기도 한다. 베트남에는 여전히 대가족 문화가 남아 있어 경제적으로 독립하거나 결혼해도 부모님 집 근처에 사는 일이 잦다. 베트남에서도 부동산은 핫 이슈 중 하나다. 이미 중국의 부동산 성장을 지켜본, 그리고 비슷하게 성장하고 있는 베트남 시장에 외국 자본이 밀려들어오고 있다. 2007년 즈음 베트남의 도시화율은 27%에 불과했다. (2017년 기준 현재 36%, 2020년 40% 전망) 그러나 도시로의 인구 집중이 불가피한 상황이기에 지금도 곳곳에서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도 10분 거리에만 아파트 ‘단지’ 4곳이 건설 중이다. ‘

‘오토바이도 발레파킹한다’는 얘기가 흥미로웠다.
베트남은 대중교통이 한국만큼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지 않아 오토바이는 필수품이다. 보통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면 부모가 면허가 필요 없는 50cc 이하 스쿠터를 사준다. 요즘은 자동차가 늘면서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오토바이는 재력의 상징이기도 하다. SH나 베스파 같은 기종이 인기 있고, 연식이 제법 오래된 중고도 거래가 많이 된다.
오토바이도 ‘Grab/Uber’에 등록할 수 있다는 점은 베트남만의 특수성이다. 대학생들은 공강 시간이나 수업 후에 우버로 파트 타임을 뛸 수도 있고, 간혹 전업으로 뛰어드는 이도 있다. 기성세대는 2030 세대가 별다른 노력 없이 일용직 우버 기사로 뛴다고 우려했고, 기존의 택시 및 쎄옴(오토바이 택시) 기사들은 손님을 빼앗아간다며 반발이 심했다. 실제로 기존 쎄옴 기사들의 수입이 줄기도 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물리적인 충돌까지 발생했다.

K-팝, K-뷰티에 대한 인식이나 인기가 어느 정도인가?
동방신기, 빅뱅 팬클럽은 아직도 주요 K-팝 행사에서 큰 역할을 하고,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엑소 팬클럽의 규모도 상당하다. 방탄소년단도 빠질 수 없다. 어느 날 카페에서 한국 사람이냐 묻더니 “나는 군대입니다”라는 구글 번역기를 보여주더라. 나중에야 BTS 팬클럽 이름이 ‘아미(Army)’라는 걸 알고 웃은 기억이 있다. 정보 업데이트도 무척 빠르다. 처음 NCT 노래가 나왔을 땐 내가 베트남어 자막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렸는데, 이젠 한국에서 관련 소식이나 노래가 나왔다 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베트남어 포스팅과 자막이 올라온다. 한국 화장품은 현지 뷰티 숍이나 페이스북, 온라인 쇼핑몰에서 무척 많이 판매되고 있다. 심지어 엉성한 한글을 붙여 한눈에도 가짜임이 분명한 화장품까지 등장할 정도다.

박항서 감독의 인기는 한때 한국에서의 히딩크 감독 수준인가 싶을 정도다.
처음 박항서 감독이 부임했을 때부터 베트남 여론이 우호적이었던 건 아니다. 비판도, 회의적인 반응도 무척 많았다. 그런데 박 감독이 이끄는 U23팀이 M150컵에서 동남아 축구 강국이자 역사적으로 베트남과 라이벌인 태국을 원정까지 가서 이긴데다, AFC U23 챔피언십에서 베트남이 동남아시아 국가 최초로 4강 진출에, 결승전까지 진출했으니 정말 난리가 났다. 신문, TV부터 온 거리에 이 소식뿐이었으니 베트남 전국민이 박항서 감독을 알 거다. 한국에선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얘기가 나오던데, 현지에선 히딩크를 모른다. 박항서 감독은 그 자체로 영웅이 됐다.

하노이부터 푸쿠억까지

어느 풍경 앞에 앉아 국수가락을 저을지 고르는 일에서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지금 베트남에서 가장 주목받는 여행지로는 너나 할 것 없이 중부의 ‘다낭’을 꼽는다. 중부 최대 도시로, 지난해 전 세계 여행지 중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한 도시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세계 6대 해변인 미케 비치가 20km 넘게 뻗어 있고, 마블 마운틴, 바나 힐이 주요 관광 스폿으로 인기다. 다낭에서 차로 30분 정도 달리면 강과 바다를 모두 끼고 있는 ‘호이안’에 닿을 수 있다. ‘올드 타운’이라고도 불리는 이 지역은 고풍스러운 매력이 넘쳐 타 지역 베트남 사람들도 일부러 찾는 곳. 형형색색의 등이 물결치는 밤 풍경은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정도다. 중남부에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나트랑’이 있다. 베트남 전쟁의 전적지들이 주변에 있어 참전 용사 관련자들이 방문하기도 하며, 최근 여러 항공사가 직항 노선을 취항하고 있어 여행업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이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 생물권 보존 지역인 데다 자연 재해가 없는 안전한 해변으로 알려진 ‘푸쿠억’은 베트남 최남단 섬으로, 조용하게 자연을 즐기며 휴양하고 싶은 이들에게 적합하다. 대형 체인 호텔이 줄지어 들어서는 추세라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고산 지대에 위치해 동남아임에도 비교적 시원한 ‘사파’와 ‘달랏’으로 향하는 여행객 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가장 높은 사파의 판시팡산은 ‘살면서 한 번쯤 꼭 가봐야 할 여행지’로 꼽히며, 한국에는 <신서유기> 촬영지로 소문나 있다. 또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이라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작지만 전통 있는 부락의 분위기를 엿보기에도 좋다. 사파의 거리가 부담스러운 하노이 현지인은 ‘미니 사파’로 불리는 ‘땀다오’에 가기도 한다고. 달랏은 남부에 위치한다. 온화한 기후 덕에 베트남 최대의 채소, 과일, 우유, 와인의 산지가 되었고, 이 풍요로움을 기반으로 각종 꽃과 나무로 꾸민 식민지 시절의 유럽풍 건물을 만날 수 있다.

좁고, 길고, 노란

좁고 기다란 형태의, 흡사 가느다란 성냥갑과 레고를 촘촘히 쌓은 듯한 건물들. 이 풍경은 하노이와 호치민을 비롯한 베트남의 상징이 됐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프랑스와의 접촉으로 베트남의 도시 발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베트남 전통 가옥은 한국과 비슷하게 가로로 넓고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형식. 그러나 근현대 시기에 등장한 베트남 주거 양식의 경우 크게 세 단계의 발전을 거친다. 집의 1층은 가게 혹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생계 유지를 위한 경제 활동에 활용한다. 이때 공간의 폭보다는 최대한 대로변에 접하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대신 안쪽으로 길게 공간을 내서 생활 공간을 만들어 쓴다. 한 변이 긴 직사각형에 가게, 창고, 생활 공간이 들어선 모습을 상상하면 쉽다.

시간이 지나면서 프랑스의 건축 양식과 결합하여 2층과 3층 건물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거리와 접해 있는 부분은 여전히 중요했으나 집 자체가 차지하는 면적은 줄어든 형태다. 프랑스 식민 당국이 재원 확보를 위해 부과한 토지세와 도시화로 인한 인구 집중, 증가가 원인이다. 식민 시절 프랑스 건축 양식이 집의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도 영향을 미쳐 새로운 형태의 주거 양식이 등장한다. 일부 상류층 베트남인은 프랑스 건축 양식을 따라 별장을 짓기도 했다. 1층은 주차장, 부엌 및 화장실로 사용하며, 2층은 거실과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으로 꾸미고, 3층은 침실과 화장실을 마련하는 구조다. 실제 프랑스인의 저택만큼 넓지는 않았어도 이 건축 구조는 지금까지 베트남에 남아 있다.

좁고 가느다란 집, 프랑스식 건축 양식 못지않게 관광객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노란색 건물일 것이다. 이 역시 프랑스 식민 지배기의 영향. 노란색은 황금색과 같아 황실의 색이며 식민 정부의 권력을 의미한다. 프랑스 식민 당국이 특히 주의를 기울인 사이공과 하노이의 주요 관공서와 건물이 노란색으로 칠해진 것도 같은 이유다. 베트남의 기후와 어우러져 뜨거운 햇볕 아래서 빛나는 노란색 건물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의 미적, 예술적 요소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노란색은 행복과 따뜻함을 상징하기도 하니까.

베트남 로컬 푸드 제대로 알기

하노이 쌀국수엔 숙주가 없다
‘포(Ph• o)’는 하노이 혹은 남딩이 위치한 북부에서 유래했다. 북부는 넙적하고 부들부들한 면을 쓰고 파와 양파, 약간의 고수를 제외하곤 별다른 야채를 곁들이지 않는다. 또 남부와는 달리 꿔이(Quây)라 부르는 튀김빵을 곁들이며 육수는 진하고 담백한 게 특징. 미국과 호주, 한국으로 퍼진 포는 남부식이다. 한국의 소면과 비슷한 비교적 가는 면을 사용한다. 양파와 파 외에 숙주를 비롯한 다양한 야채를 넣고, 꿔이는 죽에만 곁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며 육수도 북부의 쌀국수보다는 더 단 편.

분짜, 어디까지 알고 있니?
분짜(Bún châ) 역시 하노이의 특산물이다(중부와 남부에도 비슷한 분팃 느엉 Bún thít nùóng이 있지만 조금씩 다르다). 파파야 혹은 콜라비, 당근이 들어간 짭조름하고 새콤하면서도 달콤한 느억맘 국물에 숯불에 구운 고기, 쌀국수 분(Bún, 퍼와는 조금 다른 소면 느낌의 쌀국수)과 야채를 곁들이는 음식이다. 고기 종류도 다양하다. 다진 돼지고기를 갖은 양념을 더해 재운 후 동그랗게 빚은 완자인 ‘짜비엔(Châ viên)’이 있고, 삼겹살을 얇게 썰어 양념에 재운 ‘짜미엥(Châ miéng)’이 있다. 육쌈냉면과 사촌지간 느낌이라 한국인이 유독 좋아하는 분짜의 느억맘 국물은 원래 따뜻하게 서빙된다. 국내 음식점에서 간혹 차갑게 혹은 미지근하게 서빙되는데, 이 부분이 살짝 아쉽다.

프랑스, 베트남, 터키가 만난 끝판왕 바잉미가 있다.
빵을 통칭하는 단어이자 베트남식 샌드위치를 뜻하는 바잉미. 한국에는 남부식 발음인 ‘반미’로 알려졌다. 바게트를 밀가루로만 만드는 프랑스식과 달리, 베트남에서는 쌀가루를 더해 보다 쫀득한 식감으로 즐길 수 있다. 가장 무난한 바잉미를 원한다면 모둠 바잉미인 ‘바잉미 텁껌(Bánh mì thâp câm)’을 주문할 것. 길에서 ‘Bánh mì doner’ 라고 적힌 단어를 발견한다면 꼭 시도해보자. ‘바잉미 땀작(Bánh mì tam giác)’이라고도 하는데, 터키의 되네르 케밥식(이태원의 그것) 바잉미다. 세로로 세워 구운 큰 고기 덩어리를 얇게 썰어 삼각형 모양의 빵에 야채, 칠리소스와 마요네즈를 뿌린 뒤 그릴에 한 번 눌러 내준다. 별미가 따로 없다.

놓치면 아쉬울 하노이 레스토랑 5

수도 하노이에는 베트남 식문화를 기반으로 한 다이닝이 여럿 있다.

PRESS CLUB HANOI
프랑스 파리 미슐랭 2스타 레스토랑 ‘Le Carre des Feuillants’의 스타 셰프 알랭 뒤 투르니에(Alain Du Tournier)가 베트남 셰프 다오 반 손(Dao Van Son)과 함께 수준 높은 음식을 선보이는 곳. 식사 후 마무리 코스로 근처의 바 ‘La Plume’을 추천한다.
Press Club Building 59A Ly Thai To, Hoan Kiem, Ha Noi

FRENCH GRILL – JW MARRIOTT HANOI
베트남 달랏의 유기농 농장과 프랑스, 호주 등지의 유기농 재료를 엄선해 만든 프렌치 그릴을 선보인다. 모던한 분위기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근사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곳. 다양한 와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하노이에서 가장 큰 오픈 키친이 인상적이다.
JW Marriott Hanoi Hotel. 8 Do Duc Duc, Me Tri, Nam Tu Liem, Hanoi

MADAM HIEN
19세기 스페인 대사관을 개조해 만든 베트남 레스토랑. 독특한 분위기에 베트남 다이닝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낮과 밤의 무드가 서로 다르게 아름답고, 합리적인 가격대도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15 Chan Cam, Hoan Kiem, Hanoi

ÚU ĐÀM CHAY
채식주의자를 위한 레스토랑. 채식주의자가 아닐지언정 베트남 식문화를 바탕에 둔 비건 메뉴를 경험해보라는 차원에서 권하고 싶다. 음식 종류가 많아 고르는 재미도 있다. 남자보다 여자들이 더 매력을 느끼는 곳.
34, Hang Bai, Quan Hoan Kiem, Hanoi

PIZZA 4P’S
하노이에 오면 꼭 들러야 할 피자 레스토랑. 맛, 서비스, 인테리어 삼박자를 갖춰 인기가 높다. 베트남 음식과 프랑스 음식 모두 맛보았다면 바로 예약하도록 하자. 하노이에는 두 곳, 호치민에는 다섯 곳이 있다.
1) 24 Ly Quoc Su, Hoan Kiem, Hanoi
2) 43 Trang Tien Street, Hoan Kiem, Hanoi

컨트리뷰팅 에디터
신정원
좁고 길고 노란_응우엔 반 칸(NguyênVãnKhánh) (하노이 국가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베트남 로컬 푸드 제대로 알기_정리나(하노이 국가대학교 연구원), 놓치면 아쉬울 하노이 레스토랑 5_송명섭 (JW 메리어트 하노이 지배인)
도움말
하노이부터 푸쿠억까지_김안나(콩코드항공 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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