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나는 동그란 눈을 더욱 동그랗게 뜨며, 착한 마음의 가치를 힘주어 말했다. 착한 사람의 눈에는 착한 사람이 잘 보인다.
<W Korea> 12월 31일과 1월 1일에는 뭘 하며 보냈나?
유인나 버릴 것들을 정리하느라 집 안에 있는 온갖 물건을 다 꺼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 짐이 엄청 쌓여 있다.
연말이면 꼭 뭔가 정리해야 한다는 기분에 휩싸이고, 그렇게 대청소를 시작했다가 난장판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곤 하지. 정리를 대대적으로 했나?
요즘 미니멀리즘에 푹 빠져 있다. 집 구석구석에 쌓여서 내 집중력을 흐트러뜨리는 것들을 없앤 뒤 작은 목표를 세우고 집중하는 것. 그게 요즘 최대 관심사다. 미니멀 라이프라고 하면 소지품의 개수에 제한을 두고 그러던데 아직 그 정도 고수는 못 되고, 최대한 그 개념에 입각해서 접근해보려 한다. 이제 막 관심을 가진 초심자로서 넘쳐나는 내 물건을 떠나보내는 작업 중이다.
나는 한 달 내내 집 정리 중이다. 정리 정돈 능력도 재능이라고 확신한다.
나를 한번 불러주시면…
청소를 잘하나?
아주 잘한다.
청소에도 분야가 있는데 뭘 제일 잘하나?
청소와 정리 정돈은 좀 다른데 나는 둘 다 잘한다! 그런데 먼지 한 톨 없이 허전할 정도로 너무 깨끗하고, 하얗고 모던한 느낌은 별로 안 좋아한다. 인테리어 능력이라고 말하긴 거창하지만, 깨끗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을 내는 데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정리와 청소에 관한 팁을 좀 준다면.
물건, 짐이 없어야 하는 게 첫째다. 그리고 환기와 제습. 물기가 있는 곳이나 환기가 필요한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세균이 창궐한다. 나는 집 안 모든 곳의 물기를 없애고 환기를 자주 시킨다. 화장실 문도 늘 열어놓는다.
정리 대공사를 하다 보니 버릴 물건으로 어떤 게 많이 나오던가?
노트. 내가 노트를 자꾸 사는 병이 있다… 문구류를 워낙 좋아한다. 고가가 아닌 제품이 다수다 보니, 경제 활동을 시작한 이후부터 ‘문구 사는 데는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 참 많이도 샀다. 스티커도 많고. 노트가 몇 권 정도였다면 일기를 열심히 썼겠지만, 조금씩 끄적여놓은 것만 많더라. 너무 많은 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마음먹고 떠나보낼 작정을 했는데도 이것만은 도저히 못 버리겠다는 것 역시 있었겠지?
편지들. 처음엔 그것도 다 버릴 생각으로 일일이 사진을 찍었다. 자고 일어나서 한가득 쌓인 물건들 사이를 지나가다가 ‘와 솔직히 편지는 버리면 안 되지 않나!’ 싶어서 다시 건져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뭘 잘 못 버린다. 그런데 미련 안 떨려고 해도 편지를 어찌 쉽게 버릴까? 그런 추억의 산물은 지켜줘야 예의다. 그러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둘 챙기다 보면 미니멀리즘의 고수로 가는 길은 망한다(웃음). 단기간에 많은 걸 확 비우긴 힘든 일이고, 나는 목표 기간을 길게 잡았다. 1년간 버리는 프로젝트. 내년 1월 1일쯤에는 ‘이제 더 이상 버릴 게 없는데?’ 싶은 상태로 만들어보고 싶다. 며칠 안에 크게 한 차례 버리고, 그다음부터는 뭐가 됐건 하루에 세 개씩 버리기를 실천해보려 한다.
아무튼 유인나는 건전한 새해전야를 보냈겠다. 최근 극장가가 신작 개봉을 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서 당신이 출연한 영화 <새해전야>의 개봉도 좀 늦춰졌다. 어떤 영화인가? 네 커플이 등장한다. 각 커플에게 새해를 맞이하는 기간에 일어나는 일을 담았는데, 각자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가는 이야기다. 그렇게 새해를 맞아 밝은 빛을 보게 되는 이야기. 나는 이혼의 아픔이 있는 여자로 나온다.
이혼 후 신변 보호를 요청하는 상황에서 형사인 김강우 배우와 호흡을 맞춘다. 그렇다. 다른 역할에 비하면 나는 비교적 차분한 캐릭터다. 그간 워낙 통통 튀는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서 <새해전야> 속 효영과 같은 인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올해 보게 될 JTBC 드라마 <설강화>는 아직 방영 시기가 미정이다. <SKY 캐슬>을 쓴 유현미 작가의 차기작이 ‘절절한 사랑 이야기’라고 해서 기대되는데, 대본을 보고 어떤 인상을 받았나? 대본을 읽을 때 여러 캐릭터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점점 분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설강화>를 읽으면서는 하나의 구슬로 집중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밀도 있고 잘 버무려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나는 국립의료원 외과의사 강청야 역이다. 수술실에서는 빼어난 능력으로 신뢰를 얻는 의사이면서 어떤 상대든 단번에 압도하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 라고 설명되어 있지.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라는 점을 한 번 더 짚어야 할 것 같은데. 나도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가면서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매력 있는 캐릭터라는 걸 알았다(웃음). 아름답고 지적인데 내면에 무엇을 감추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인물이다.
남자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아직도 <지붕 뚫고 하이킥〉 시절의 귀여운 유인나가 종종 언급된다. 나는 <도깨비>에서 당신의 모습을 보고 놀란 기억이 있다. 무심하게 독특한 말투로, 천연덕스럽게 연기하는 면 때문에. <도깨비>의 써니를 표현할 때 고민이 많았다. 특이한 말투를 위해 수십 가지 버전을 시도해보면서 그중 고른 것이다. 그런 말투를 두고 ‘저게 뭐야’ 하는 반응이 있을까 봐 걱정이 컸는데, 방송 이후엔 내가 그런 걸 해냈다는 생각에 스스로 신기하기도 했다. 대본 리딩 때부터 공유 오빠가 써니의 캐릭터가 독특하고 말투도 재밌다고 칭찬을 많이 해줬다.
크게 히트한 <도깨비>는 물론 데뷔작인 시트콤부터, 그리고 <최고의 사랑>과 <별에서 온 그대> 등 흥행작 경험이 적지 않다. 그런 경험은 당신에게 자부심을 주었나? 그저 행운이었다고 생각하나? 작품들이 잘된 게 운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훌륭한 대본과 연출과 연기의 합이 분명 흥행할 만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그런 작품 속 역할에 내가 캐스팅된 건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 말고도 잘 소화해낼 수 있는 배우는 너무 많으니까. 그래도 내가 제비뽑기로 뽑힌 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자부심은 느낀다.
가까운 친구들은 당신의 성격에 대해 어떤 말을 하나? 예전에도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서 친한 친구 몇 명에게 물어봤다. 모두 공통의 이야길 했다. 여리지만 강하다, 고민의 해결책을 잘 내놓는다, 맛있는 걸 잘 사준다, 솔직하다, 정이 많다… 아마 단점은 속에 감추고 장점만 말 해준 것 같다.
당신과 가까운 이들에게 공통점이 있나? 착한 사람들이라는 점. 나는 착한 사람에게 대단히 끌린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어릴 때는 착한 마음을 갖는 것보다는 야무지고 자기 장기를 잘 발휘하는 게 최고인 줄 알았다. 어른이 된 어느 날, 그런 나 자신이 너무 별로라고 느껴지더라. 지금도 장기를 잘 발휘하는 어린이보다는 어딘가 쭈뼛거리는 착한 눈을 가진 어린이가 좋다.
착한 게 좋은 건데, 우리 사회에서는 착한 것의 가치와 미덕이 곧잘 잊히고 폄하된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착하게 사는 게 바보 같다는 것과 비슷한가 싶을 때도 있고. 당신이 말하는 착함의 조건은 뭔가? 손해를 감수하는 것. 예를 들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는 누구에게나 그 타당한 이유란 있다. 그런데 화난다고 화를 그대로 내고, 짜증 난다고 짜증 내는 건착한 게 아닐 거다. 손해를 감수하고서도 타당한 화, 타당한 짜증을 상대에게 내지 않는 것, 그런 게 바로 양보이고 배려이고 착함이다.
우리는 가까운 사이나 필요한 사이에서는 솔직해야 한다는 점을 핑계로 착하지 않게 굴기도 하는 것 같다. 착하다는 건 똑똑한 거다. 착한 이들은 뭘 몰라서 참는 게 아니라, 꿰뚫고 있으면서도 상대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참는다. 화나 짜증을 낼 수도 있는 어떤 상황에서, 자기에게도 설명할 거리와 이유가 충분히 있는데도 상대가 속상할까 봐 배려하는 거지.
당신의 절친인 아이유와는 어떤 점이 그리 잘 통하나? 비슷한가, 서로 달라서 상호보완적인가? 비슷함과 서로 달라서 상호보완적임의 비율이 딱 반반이다. 그 점이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듯하다. 사람이 자신과 너무 닮은 사람과 함께하면 서로 잘 이해하면서도 어느 순간 진저리를 치게 될 수도 있다더라. 그 말 맞는 것 같다. 그렇다고 너무 다르면 안 맞는 사람처럼 느껴질 테고.
혹시 동성 친구들도 당신에게 사랑스럽다는 말을 하나? 언젠가 아이유가 방송에서 나에 대해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체’라는 말을 했는데 그걸 보며 기분이 정말 좋았다. 하지만 우리 둘이 있을 때는… 뭐 그냥 중학교 남자아이들처럼 논다(웃음).
당신이 올해 마흔이라는 걸 알면 깜짝 놀랄 사람이 많겠지? 30대의 유인나를 정리해보면 어떤 10년이었나? 그야말로 희로애락의 10년이었다. 초반에는 뭐가 뭔지 몰랐고, 중반에는 한계와 좌절의 시간을 겪기도 했다. 그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성숙해지면서 행복의 기준이 바뀌었다. 음식과 친구와 햇빛만으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아차린 후로는 잠시도 깊은 우울감에 빠져본 적이 없다. 30대 후반을 평온하게 마무리한 덕분에 지금의 나는 좋은 에너지로 가득 차 있다.
40대를 맞는 두려움은 없나? 없다. 서른아홉을 주로 행복하게 보내는 동안에도 개인적으로 힘든 일들이 터져서, 스물아홉 때도 못 느낀 아홉 수라는 걸 느끼기는 했다. 그게 불안하기도 해서 어서 내년이 되면 좋겠다, 새롭게 시작하자 했더니 마흔을 맞으며 이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라디오 방송 <볼륨을 높여요>의 디제이 때 그랬던 것처럼, 신년 덕담 한마디 부탁한다. 내가 소셜 미디어 활동을 거의 안 했던 사람인데 2020년 한 해 동안 유튜브로 투병 중인 사람을 많이 찾아봤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르겠지만 아픈 이들에게 관심이 커졌다. 전에는 ‘건강이 최고’라는 생각을 자주 했고 그 생각에 변함은 없다. 다만 이제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거다’ 식의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상처가 되는 말이겠구나 싶다. ‘아프지 말자’는 결심만으로 건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해엔 ‘건강하자’는 말 뒤에 하나를 더 붙이고 싶다. 여러분, ‘아프더라도’ 우리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아요.
- 패션 에디터
- 박연경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김희준
- 스타일리스트
- 김현정
- 헤어
- 선옥
- 메이크업
- 차니
- 주니어 에디터
- 이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