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심장, 냉정한 두뇌, 자유로운 몸으로 오늘도 행복을 향해 움직이는 카이가 구찌의 에필로그 컬렉션과 쓴 즐거운 이야기.
복고풍 의상이 아주 잘 어울리는 거 아나?
카이 아, 나도 좋아한다.
하기야 카이에게 어떤 의상인들 안 어울릴까. 그래도 오늘 입은 꽃무늬 트렌치코트나 자카드 팬츠는 아무 남자나 소화하지 못할 것들이다. 구찌와 촬영할 때 너무 신나는 게, 시중에 흔치 않은 스타일이 많다. 오늘 촬영 때 입어본 것 중에서는 초록색이 들어간 니트 카디건도 좀 탐나고. 심플하게 티셔츠만 입고 찍은 것도 잘 나온 것 같다.
코트를 어깨에 걸치고 찍은 사진 중에 팔과 손으로 학과 같은 선을 만든 포즈가 있던데? 그 무심한 요염함이 최종 화보에 꼭 담겨야 할 텐데. 카이 씨, 화보 좀 찍어보셨나 보다. 하하, 워낙 많이 찍어서.
못하는 건 뭔가? 뭐든 당신이 못하는 걸 쭉 읊어보면 좋겠다. 못하는 거 많지. 우선 몸 쓰는 일을 진짜 못한다.
카이, 하면 몸인데 정말? 정말. 춤추는 거랑 이렇게 화보 찍는 거 말고 몸과 관련된 건 못한다. 운동도 못하고, 뭘 잘 망가뜨리고. 잘 흘리고 다니고, 잘 잃어버린다. 내가 평소 복잡한 거 별로 안 좋아하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무심하게 사는 편이라.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 유튜브 촬영으로 꽤 오랜 시간 레고에 집중했는데. 기껏 만들어놓고 나서 곱게 간수를 못하고 박살내곤 한다(웃음).
11월 30일, 데뷔 이후 첫 솔로 앨범인 <KAI>를 발표하고 한창 활동 중이다. 타이틀곡 ‘음(Mmmh)’에 대한 소감을 말하자면… 듣고 보고 있으면 좀 야하다(웃음). 뮤직비디오 중간중간에 이질적인 풍경이 등장하는 게 특이했다. ‘음’이라는 소리 하나가 다양한 경우와 뜻으로 쓰인다. 살면서 무의식중에 자주 뱉는 말이다. 조금 전에도 말하다가 ‘음’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뭔가를 생각하는 타이밍이나 알아들었다는 신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런 ‘음’을 단순하게 표현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서 뮤비에 그렇게 표현해봤다. 디스토피아적인 느낌도 넣었고, 미래인지 어딘지 다른 세계로 이동하기도 하고, 다양한 세상과 사람을 만나가는 내 존재를 신처럼 나타낸 내용이다.
‘음’ 뮤직비디오 안에서 당신의 헤어스타일이 여러 차례 바뀐다. 방송 무대 때도 착용한, 긴 술이 달린 비즈 장식의 모자가 눈에 띄더라. 다양한 상상을 자극하려니까 아이템 중 하나로 모자가 떠올랐다. 그 모자가 약간 신비로운 느낌도 나고, 모자라는 게 얼굴을 가리니까 보는 이를 조금 감질나게 만든다. 쓰고 있다가 확 벗었을 때 어떤 해방감도 주고.
앨범이 나올 무렵 EXO 유튜브에 ‘Film’이란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앨범에 실린 여섯 곡을 약 1분씩 추려 뮤직비디오처럼 구성했던데 깜짝 놀랐다. 모든 곡의 퍼포먼스를 짜고, 제각각의 콘셉트로 촬영까지 하다니. 각 음악의 하이라이트 메들리이자 각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영상이다. 사람들이 노래를 들었을 때 펼칠 수 있는 상상을 현실로 보여드리고 싶었다. 곡들을 모아보니 각자의 이야기가 그려졌다. 대부분 사랑 이야기지만, 사랑에도 여러 시점이 있다. 처음 만났을 때, 가장 뜨겁게 타오를 때, 끝물일 때… 그렇게 곡마다 다른 이야기를 퍼포먼스적으로 표현하되 거기에 내 이야기를 접목해서 풀어보았다.
엑소나 슈퍼엠에서 보컬 쪽 멤버는 아닌데, 데뷔 후 처음으로 혼자 앨범의 모든 노래를 소화했다. 앨범 만드는 데 약 8개월 걸렸다. 물론 연습생 시절부터 노래 연습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본격적으로 연습했다. 그런데 내가 솔로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춤을 엄청 잘 추는 가수’, ‘노래를 잘하는 가수’처럼 특정적인 하나는 아니다.
그럼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나는 카이라는 이미지를 위해 모든 걸 도구로 활용하고 싶다. 단순히 퍼포먼스를 잘하는 아티스트, 옷 잘 입는 아티스트 같은 타이틀은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름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고 떠올리는 이미지가 더 중요하다. ‘카이’라고 하면 카이가 또 뭘 보여줄까 하는 기대감을 계속 가져가고 싶다. 이번 앨범 활동에서든 다음 활동에서든 내가 보여주고 싶고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면, 그때마다 10년 가까이 가수 생활하면서 쌓은 것, 구찌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느낀 것, 기타 그 무엇 중에서 적절한 걸 가져다가 표현 도구로 쓰고 싶다는 거다.
아티스트 카이는 왠지 빈틈이 안 보이는 느낌이다. 하기로 한 게 있으면 독하게 완성해낼 것만 같다. 독한 스타일은 아니다. 나는 그저 필요한 것을 한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예전 인터뷰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춤으로 끝판왕이 돼야지’ 하면서 정복하려는 마음으로 뭘 하고 싶지는 않다. 생각하는 그림이 있으면 그 그림을 위한 노력을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하려고 한다. 아티스트라면 누구나 베스트인 상태의 그림을 생각할 테니, 할 건 최선을 다해 하겠지.
늘 ‘적절한’ 답을 찾으려는 사람인가? 그렇다. 독하게, 내 마음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사는 건 옛날에 이미 해봤다(웃음). 그렇게 살아서 안 좋다는 걸 경험으로 알았기 때문에 이젠 그 길을 갈 필요가 없다. 이번에 앨범 내면서 3사 방송 무대를 돌았다. 솔로 무대를 발표하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이 있었던 셈이지. 첫째 날에 뭔가 너무 맘에 안 들어서 힘들었다. 둘째 날 당연히 만회하려고 노력했고, 셋째 날에는 만족한 것까진 아니지만 어쨌든 처음보다 점점 나아진 상태였다. 그런 흐름. 그 정도면 된다. 여기선 이렇게, 저기선 저렇게 외우고, 카메라가 지금 나를 어디서 잡고 있고,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노력을 하진 않는다.
어릴 땐 미련할 정도로 열심히 하기만 했다면 프로가 되고 성숙해지면서 적정선을 찾았다는 말로 들린다. 그건 태도와 마인드의 문제 같다. 그럼 그 외에 당신처럼 처음부터 잘했던 사람은 어떻게 레벨업을 할 수 있었나? 내가 여덟 살 때부터 발레를 했으니 춤에 있어선 클래식부터 시작한 경우다. 재즈랑 발레를 하다 어번 댄스라는 걸 처음 배웠을 때 굉장히 놀랐다. ‘아, 이런 게 있구나.’ 가수 생활이 그런 식의 놀라움과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무대 위에서 열심히 춤추고 노래 부르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다가 아니더라. 아무래도 춤에 관한 고민을 많이 했다. 가사가 감정을 담듯이 춤으로도 가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나는 그림도, 음악도, 춤도,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한다. 무대를 향한 사랑이 커지면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도구가 점점 늘어난 셈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게 뭔지, 목표가 뭔지 정확히 알면 그에 대해 생각하고 노력하면서 자연스레 레벨업을 하는 것 같다.
너무 현명해서 할 말이 없네. 뭐 내 경우는 그랬다. 그런 식이 아니라 단지 ‘춤 잘 추고 싶다’, ‘노래를 더 잘하고 싶다’ 식의 레벨업을 바라면 더 괴로울지도 모른다. 재미도 없고.
춤과 무대가 지긋지긋한 적은 없나? 없을 수가 없다. 괴로움이 클 때도 있고. 나는 어떤 때 괴로웠냐면, 스스로 만족을 못했을 때 스트레스가 정말 심했다. 그게 가수 생활뿐 아니라 인간 김종인을 좀먹는 기분이었다. ‘이건 건강하지 않다’고 여실히 느꼈다. 덜어내야 했다. 그 이후 혹시나 괴로움이 온다고 딱 인지하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먼저 따져본다.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살려고 한다. 그 다음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여기서 덜고, 저기서 덜고.
자신을 아낄 줄 아는 사람 같다. 아껴야지. 스스로를 아끼며 살아야 한다. 그게 잘 안 되는 분들은 극한을 한 번 느껴보면 그 계기로 달라질 수 있다. 사실 그런 경험하기 전에 달라지면 제일 좋고. 우리, 행복하려고 사는 거 아닌가? 나는 행복도 노력해야 따라온다고 생각한다. 늘 내가 추구하는 건 행복이다.
당신에겐 어떤 일이 생기면 혼자 고민하고 분석하고 답도 스스로 구하는 자동 정화 시스템이 있나 보다. 맞다. 나 혼자서, 아니면 가족과 나눈다. 나는 우리 가족이 정말 좋다. 내가 이렇게 잘 살게끔 해준, 지금의 김종인을 만들어준 가족이 고맙다. 최근에도 누나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우리 누나들을 인간적으로 존경한다.
‘우리 누나들을 존경한다’는 남동생을 현실에서 처음 본다. 대체적으로 카이에게 중요한 두 가지를 꼽자면 가족과 일인가?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나 자신이다. 내가 행복해야 한다. 그다음이 가족, 세 번째가 일이다.
얼마 전 <나 혼자 산다>에서 최근 독립해 마련한 집과 조카들 공개한 거 봤다. 밥 먹으면 설거지 바로 하는 타입인가? 그때그때 바로 하는 편이다. 근데 주로 시켜 먹는다. 요리도 잘 못하고. 고기 구울 줄만 안다.
청소 같은 거 해주시는 가사 도우미 있나? 아니, 내가 한다. 어머니가 도와주고. 자주 오신다. 집이 바로 앞이라 사실 뭐 독립 같지도 않다(웃음).
아직 어린 귀여운 조카 둘이 있더라. 시간이 흘러 조카들이 ‘나도 삼촌 같은 스타가 되고 싶어’라고 하면, 카이 삼촌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조언은 뭘까? 음. 일단 조카에게 물어볼 것이다. 스타가 되고 싶은 거냐고. 가수를 하고 싶다면 왜 가수를 하고 싶은지도. 연예인이 되겠다고 할 때 잘될 경우만 상상하기 쉬운데, 누가 나를 계속 찾아주지 않아서 잘 안 풀렸을 때의 힘듦도 있다. 스타가 되는 걸 목표로 산다면 설사 스타가 된 후에도 평생 스타로 살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까 왜 원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를 먼저 따져보라고 하고 싶다.
삼촌은 전 세계를 누볐으면서 왜 내가 하겠다고 하니까 격려해주지 못하냐고 하면 어쩌지? 내가 이 일을 시작한 이유는 그저 춤이 좋아서였다. 스타가 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는 춤과 관련한 일이라면 인생이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누구나 좋아하는 걸 하면서 관련 직업을 가져보고, 그 직업으로 잘 안 풀리면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직업만 좀 바꿔볼 수도 있다. 직업이 잘 안 된다고 인생이 망하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혹은 직업을 분리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연습생 시절이나 데뷔 초 막연히 생각하던 성공의 지점은 이미 예전에 지나갔겠지? 나는 연습생을 하면서도 가수가 뭔지 제대로 몰랐다. 춤이 재밌고, 노래 배우는 게 재밌고, 좋아서 계속했고, 데뷔한다니까 데뷔했다(웃음). 보통은 가요대상 같은 데서 대상 타면 성공이라고 여기니까 아마 대상 받으면 좋겠거니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대상을 처음 받은 후, ‘이게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될 수는 없다’는 걸 느꼈다. 한국에서 상 받으면 해외에서도 받고 싶고, 앨범 100만 장 나갔으면 다음엔 200만 장 나갔으면 좋겠고… 사람 욕심에 끝은 없다. 그런 것보다 일 자체를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뭔가를 할 필요도 없다. 왜냐면 행복하려고 사는 거니까.
카이한테는 열정과 냉정이 공존하는 것 같다. 분명 뜨거운 에너지가 있는데, 선택하고 집중한 것에 쏟는 것이라 그 에너지가 단호한 막에 둘러싸인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명확하다. 내가 욕심내서 작곡과 작사에 도전할 수도 있었겠지만, 세상에 나보다 그런 일을 잘할 사람이 많다. 나는 플레이어니까 훌륭한 다른 가사를 두고 굳이 내 가사를 고집할 이유는 없는 거다. 나는 내가 잘할 수 있고 표현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좋다. 그러면서 팬들을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욕구가 좀 있다. 내 팬들이 워낙 눈이 높아서.
눈 높은 상대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도전 정신과 그게 잘 통했을 때의 희열 같은 건가? 충성도 높은 팬들은 웬만하면 다 좋아하고 지지해주지 않나? 안 좋은 것에 대해서는 반응이 확실하다. 그래서 계속 좋다고 느끼게끔 해주고 싶다. 거기에 더해 나를 새롭게 접하는 분들이 우리 팬들만큼 날 좋아하진 않더라도 날 인정하게끔 만들고 싶다.
팬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아티스트는 팬덤과 어떤 식으로 유대감을 형성하는지 궁금하다. 공동 운명체 같은 느낌일까? 그런 면이 있다. 같이 간다는 것. 지금 같이 갈 뿐만 아니라 그 길에서 우리의 과거를 돌아볼 수도 있고. 콘서트를 할 때 관객은 무대라는 그 결과물을 보고 느낀다. 골수팬들은 결과물뿐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도 같이 즐긴다. 처음엔 그저 관객이었다가 무대를 보고 팬이 되고, 그다음에는 관심을 갖고 아티스트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점점 아티스트의 과정을 함께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콘서트를 봤을 때 팬 자신이 그 무대를 해낸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할 것이다. 그간 자신이 서포트해왔으니까. 그래서 우리가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빌드업’되는 세계 같다. 듣다 보니 EPL 레이스가 떠오르는데… 여전히 첼시 팬인가? 어어! 그런 거다! 축구도 과정이다. 리그의 첫 경기부터 마지막 38번째 경기까지 과정이 있고 스토리가 있는 레이스. 어느 날 문득 깨알았다. ‘내가 첼시 팬으로 하는 행동과 느끼는 마음이 우리 팬들과 같겠구나.’ 첼시 덕질을 하다 보니 팬들을 더 이해하게 된 점이 확실히 있다. 내가 이렇게 하면 팬들이 행복하겠구나, 우리가 이런 감정을 같이 느끼면 좋겠다, 싶은.
오늘 가장 많이 등장한 말이 ‘행복’이다. 그래서, 요즘 카이는 행복한가? 행복하다. 그리고 재밌다. 재미, 이것도 중요하지. 팬들이 좋아하는 모습 보면서 더 행복해지는 기분이다. 정말로.
- 패션 에디터
- 이예진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포토그래퍼
- HYEA W. KANG
- 스타일리스트
- 김세준
- 헤어
- 박내주(빗앤붓)
- 메이크업
- 현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