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JTBC 드라마 <사생활>의 방영을 앞둔 서현은 이제 좀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자신이 걸어왔고, 앞으로도 걸어갈 길에 대해서.
2017년 <더블유>와 나눈 인터뷰에서 당신이 이런 말을 남겼더라. “지난 10년간 다소 고지식하게 살아봤기 때문에 이젠 원하면 자신을 좀 풀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서현 참 기특한 말을 했네, 하하. 마음이 좀 편해진 걸 보니 그때 했던 말이 어느 정도 이뤄졌나 보다. 올해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나이의 앞자리 수가 바뀌었다 는 사실 때문인지 몰라도 체감상 작년과 마인드가 정말 다르다. 여유가 많이 생겼다.
9월 JTBC에서 방영할 드라마 <사생활>을 촬영하고 있다고 들었다. 몇 주 전 첫 대본 리딩을 마치고,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촬영장에서 보내고 있다. 이번에 맡은 차주은이란 캐릭터를 시놉시스 그대로 읊어 설명 하자면 ‘뻔뻔하고 거침없는 생활형 사기꾼’이다. 여태 맡아온 캐릭터와는 느낌이 정반대다. 엄청 현실적이다. 처음 대본을 받자마자 ‘이게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니까. 기존 드라마에서 표현되던 여자 주인공의 전형이 있지 않나. 캔디처럼 정의롭게 열심히 인생을 살아가지만, 결정적으로 집안이 부유하지 않은. 차주은은 그런 전형에서 많이 비켜난 캐릭터다. 나도 가끔 연기하면서 생각한다. 얘 이래도 되나… 하하.
어쩐지 ‘뻔뻔하고 거침없는 생활형 사기꾼’의 네 어절 모두 당신에게선 상상할 수 없는 기질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나는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 ‘약간 나 같은데?’ 생각했다. 물론 소녀시대 막내의 모습으로 오랫동안 비쳐졌기 때문에 그때 이미지로만 받아들이는 대중도 있다는 것쯤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성격은 내가 가장 잘 알지 않나. 의외로 난 정말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가끔 주변 사람들로부터 푼수 같다는 얘기도 듣고.
우리는 모르고 당신만 아는 인간 서현의 모습은 뭔가? 엄청 엉뚱하고 장난기도 많다. 특히 소녀시대 언니들과 있을 때 심해진다. 하하. 데뷔하고 13년 동안 고정 예능을 딱 한 번 했다. MBC <우리 결혼했어요>인데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당시는 지극히 순진하고 소극적인 모범생 이미지로만 그려졌는데, 그때로부터 나는 정말 많이 달라졌거든. 사람들에게 시간이 흐르며 변한 내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된 게 3년 전 멤버들과 JTBC <아는 형님>에 출연했을 때다. 그때 씨스타의 ‘Shake It’에 맞춰 춤을 췄는데 그게 그렇게 화제가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영상이 유튜브에 오르고 ‘무아지경’이라느니 ‘서현 저렇게 신난 것 처음 본다’는 댓글이 달렸지. 그런데 그게 평상시 내 모습이다! 일부러 웃기려고 춤춘 건 절대 아니었다. 그걸 보고 놀라워하는 사람들을 보고 오히려 내가 놀랐다. 단지 신나서 춤췄을 뿐인데 예상 밖의 반응이 나오니까 ‘도대체 이게 왜?’ 싶었다.
대중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당시 너무 신나 보여서? 노래 하나에 사람이 저렇게까지 신날 수 있구나 싶었다. 내가 원래 그렇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아도 술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는 스타일이다. 며칠 전에도 티파니 언니 생일을 맞아서 소녀시대 멤버들이 모였는데 언니들이 말하길 그날 내가 제일 정신을 놓고 놀았다고 한다. 하하.
사람들이 당신에게 품는 일종의 ‘고정값’에 답답함을 느낄 때도 있겠다. 예전에는 이미지 변신에 대한 압박감이 있었다. 늘 고민했으니까. 사람들은 왜 나의 단면만 바라보려고 하는지를. 나를 직접 겪은 사람들에게 가장 자주 듣는 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서현 씨 이런 성격인지 몰랐어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반응을 그냥 즐겼다. 내가 실제로 가진 모습이 딱 대중이 생각하는 만큼이라면 성격을 바꾸려고 머리를 싸매면서 노력했겠지만 사실 난 그보다 훨씬 다양한 면모를 품은 사람이니까.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하나씩 꺼내 보여주면서 신선한 충격을 주는 것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이런 점이 오히려 배우로 활동하기엔 장점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얘한테 진짜 안 어울릴 거야’라고 생각한 배역을 잘 해 내면 그게 훨씬 크게 가 닿을 수 있으니까.
멋대로의 판단이지만, 과거 TV 너머 지켜본 당신은 왠지 아침 7시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완벽한 식단의 식사를 마친 후 독서를 하며 남은 시간을 보낼 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다. 하하. 예전엔 그랬다. 몇 년 전 다이어리를 찾아보면 빈 공간이 하나도 없다. 분 단위로 그날 해야 할 일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고, 어떤 음식은 피해야 하는지 나만의 룰을 만들면서 살았는데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의 나에게 되게 고맙다.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착실하게 살았구나 싶어서. 가끔은 왜 이렇게까지 자신을 옭아 맬까 답답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험난한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를 내 힘으로 지켜야 했기에 그렇게 살았고 후회는 없다.
당신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내 인생의 방향성 이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정말 정신없이 바빴다. 내가 어제 무슨 스케줄을 소화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앞만 보고 달렸으니까. 그러다 문득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의문이 들었다. 남들이 보기엔 굉장히 화려하고 행복해 보이는 삶이지만 본질적으로 무엇을 위해 사는 사람인지 스스로 물었을 때 도무지 답을 모르겠더라고. 그때부터 하루에 적어도 30분이라도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으로 타인의 삶을 간접 경험하고 그들이 찾은 돌파구를 나에게 적용하면서 하나씩 룰을 만들었다. 이 책의 이 구절은 꼭 지켜야 하고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어떻게 보면 좀 강박적이었지.
그런 당신이 최근 인터뷰에선 ‘자유’란 단어를 자주 꺼내더라. 주어진 일은 최선을 다해서 마무리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작은 실수라도 하면 끊임없이 자책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으니까. 실수한 날엔 꿈에서도 그 장면이 리플레이되기도 하고. 제3자가 나를 화나게 할 때보다 자신에게 실망할 때가 가장 참기 힘들었다. 열심히 준비해서 ‘미션 클리어’ 하는 순간의 성취감이 그동안 나를 움직여왔던 것도 있다. 그런데 인생이란 게 일을 열심히 했다고, 완벽하게 했다고 잘 사는 건 아니지 않나. 뭔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가수, 배우 서현이 아닌 인간 서주현은 어떤 사람인지 영 모른 채 살아온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지난 3년만큼은 지난 시간을 하나하나 되돌아보면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예전엔 시간을 금처럼 아껴 썼다면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해볼까?’ 하면서 나에게 허송세월하는 시간도 줘보고. 그렇게 하면서 강박이 많이 사라졌다. 이제는 나 자신을 믿게 됐다. 굳이 나를 의심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검열하지 않아도 된다고.
계속해서 답을 구하는 사람. 오늘 당신과 대화하며 느낀 점이다. 내가 당신을 잘 본 게 맞나? 맞는 것 같다. 다만 그 과정에서 변치 않는 것이 있다. 언제나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되고자 꿈꾼다는 것. 외적으로 표현 방식이 강한 사람보다 내면으로 뿌리 깊게 꼿꼿이 설 수 있는 사람이 정말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겉으론 약하고 착해 보여도 어떤 시련이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내 궁극적인 목표 같다.
2020년 8월 5일 오늘, 사실 아주 특별한 날이지 않나. 소녀시대가 데뷔 13주년을 맞이했다. 오늘 아침 당신의 인스타그램에도 게시글이 하나 올라왔다. 거기에 적힌 문장을 읽곤 내가 서현도 아닌데 괜히 뭉클했다. ‘안녕, 13년 전의 서현아.’ 하하. 데뷔한 지 이렇게 오래됐나 싶다가도 마치 엊그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복잡한 감정인 것 같다. 그때 당시 많이 순수했고 어렸고 열심히 살았다는 생각은 항상 든다. 지금에야 열일곱의 나를 떠올리면 진짜 대견하다는 마음뿐이다.
그때의 활동이 당신에게 남긴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 이렇게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것. 너무 치열했지만 어디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을 하지 않았나. 정말 찬란했고, 정말 많이 배웠다. 과거 꾀부리지 않고 정석대로 살았던 게 조금도 후회스럽지 않을 만큼.
올해 2월 JTBC에서 방영한 단막극 <안녕 드라큘라>에서 당신은 극 중 연인에게 말한다. “네가 아니었으면 내 20대는 특별하지 않았을 거야.” 돌이켰을 때 당신의 20대를 특별하게 만든 존재가 있나? 소녀시대 언니들. 연습생 시절부터 따지면 언니들과 만난 지 햇수로 18년이다. 정말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초등학생 때 만나서 매일같이 연습하고 같은 꿈을 꿔 데뷔하고. 이제는 서로에게 감추는 것 없이 모든 걸 보여 줄 수 있는 사이가 됐다. 앞으로도 이런 사람들은 내 인생에 없을 것 같다. 물론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며 진실한 친구를 만날 수도 있지만 그 깊이만큼은 확실히 다를 거다.
게다가 3, 4인조도 아니고 8명이 13년을 함께해온 셈이니까. 물론 좋은 기억만 있는 건 아니다. 하하하. 친구들과도 그렇게 싸우는데 멤버들이라고 그냥 넘어갈 리 없지. 별것도 아닌 일로 서로 꽁해 있기도 하고 친자매처럼 다투기도 많이 했다. 그 안에서 경쟁도 치열했고.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여덟 명이 모인 셈이다. 외동으로 자라서 타인과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게 익숙하지 않았는데 언니들과 함께 지내면서 사람마다 가치관이 제각각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틀린 게 아닌, 다르다는 걸 깨닫게 됐다.
서른 살의 서현은 어떤 시간을 통과하는 중인가? 정말 머릿 속으로 상상만 하던 서른이 됐다. 작년과 또 다르다. 이제는 좀 여유가 생겼다. 인생 제2막을 펼치는 중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할까? 점점 포기할 줄도 알게 된 것 같다. 예전엔 절대 포기하면 안 되고 그 순간 도태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가치가 있다고 깨닫는 중이다. 욕심이 없어졌다기보다, 욕심의 색깔이 변한 것 같다.
서현은 무엇을 욕망하는 사람인가? 인정, 성취를 욕망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만족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것 같다. 나는 이게 굉장히 건강한 삶이라고 믿는다. 다만 남을 의식하는 인정 욕구, 성취감보다는 나 자신을 향한 인정, 나 자신을 위한 성취가 건강하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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