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건으로 감각 충만한 봄과 여름을 나는 법.
낮에는 수은주가 성큼 올라섰다 밤이 되면 곤두박질치는 날이 반복되는 요즘, 가장 어울리는 옷을 꼽으라면 카디건이다. 여기서 말하는 카디건은 단추를 꽉 채운 과도하게 단정한 것이나, 곧잘 훈계를 내리는 엄격한 부모가 입을 법한 그런 종류가 아니다. 섹시하고 관능적인 카디건. 단추는 겨우 채워져 있고, 바람에 일렁이듯 부드러운 감각을 깨우며, 이따금 피부의 한 조각을 드러내 이 계절과 어울리는 순간을 만드는 것. 카디건의 영향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됐는데, 이는 여름이 가을로 번진 것처럼, 즉 여름의 스핀오프로 보인다. 그리고 가장 영향력 있는 모델 중 한 명인 카이아 거버가 달콤한 라벤더색 카디건을 입고 나와 이 유행을 확정지었다. 그녀의 스타일링은 하이웨이스트 데님에 그녀의 시그너처인 컨버스 스니커즈를 매치하고 얇은 스카프를 목에 두른 식이었다. 카디건의 좋은 예는 계속 등장했다. 할리우드 배우 케이티 홈스가 택시를 부를 때 카이트(Khaite)의 오트밀색 캐시미어 카디건과 브라톱 셋업을 아슬하게 걸친 장면은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장식했고, 너무 작아서 허리가 다 드러나는 카디건을 입은 모델들은 이미지 홍수 속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했다. 보통 이들은 90년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나 나오미 캠벨이 그랬듯 둥그스름한 모양의 선글라스, 워싱이 잘 빠진 데님 팬츠, 스트랩 샌들, 날렵하고 어깨에 달라붙는 크로스보디 백을 매치한다. 벨라 하디드는 화사한 머스터드색 카디건을 입었는데, 첫 번째 단추만 잠그고, 복부가 드러나는 건 개의치 않으며 파파라치 세계를 유유히 누볐다. 카디건의 섹시한 착용은 결국 경험의 일종이다. ‘잠금’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부드럽게 펄럭이는 카디건으로 1990년대식 여름 영화의 스핀오프를 완성할 수 있다. 카디건 신의 무드를 관통하는 90년대 방식의 한껏 여유 부린 카디건 말이다. 영화 <조브레이커>에서 유혹자 역할을 맡은 로즈 맥고완의 유니폼은 ‘언버튼’을 항상 강조했고, <메리에 관한 것>에서 카이아와 비슷한 카디건을 입은 캐머런 디아즈는 단추를 형식적으로 겨우 잠그는 식이었다. <보우핑거>에서 헤더 그레이엄이 입은 퍼가 트리밍된 병아리색 카디건은 당시 유행에 성공했고, <25살의 키스> 속 드류 배리모어의 사랑스럽지만 어설픈 괴짜 캐릭터는 잇걸 대열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과연 카디건 셋업을 입은 잇걸들이 드류에게 무엇을 하겠는가? 분명 카디건이다. 다시 말해서 단추를 조금 풀고 긴장을 늦춰라. 카디건 시즌이 돌아왔고, 지금 이 계절을 즐기러 온 것이다.
- 패션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목정욱
- 모델
- 앨리스
- 헤어
- 이에녹
- 메이크업
- 오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