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즐기는 행복함을 동력 삼아 나아가는 EXO 백현의 견고한 아이덴티티.
우리 수년 전 EXO 인터뷰로 만난 적이 있다. 그때 당신이 한 말 중에 생생히 기억나는 대목이 ‘SM에 들어가기 전까지 부천에서 내가 제일 노래 잘하는 줄 알았다’고 한 거다. 백현 그때는 그랬지(웃음). ‘근자감’이 있었다.
그 말을 들은 덕분에 이후 점점 능숙해지는 백현을 볼 때면, 공부 잘하는 아이가 과고나 외고에 들어가서 전교 석차 확인하고 기가 죽었다가 절치부심해서 톱을 찍는 스토리 같은 게 연상됐다. 어우, 연습생 시절 자신감 많이 꺾였다. 잘하는 사람이 많아서 내 노래를 뽐낼 수가 없는 분위기더라. 프로로 진입하는 단계에서는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되고, 디테일 하나까지 완벽함이 요구됐다. 노래가 내 장기라는 차원을 떠나 음악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새롭게 할 필요가 있었다.
백현이라면 처음엔 기가 꺾였어도 어느 순간 자신감이 또 슬슬 차올랐겠지? 그렇다, 어느 정도. 그리고 설사 누가 기를 죽인다고 죽는 성격이 아니다 내가(웃음).
머지않아 솔로 앨범을 낼 예정으로 알고 있다. 요즘 상황 때문에 애초 계획된 일정에 변화가 생겨서 조금 막연할 수도 있겠다. 계획과 달리 여러 활동을 못하고 있지만, 다들 쉽지 않은 상황이고 고생하는 분도 많으니까. 앨범은 여러 면에서 더 과정이 남았는데, 지난 솔로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테니 기대하셔도 좋다.
지난해 여름에 낸 첫 솔로 앨범 <City Lights>를 작업할 때는 어떤 바람과 목표가 있었나? 예전부터 시티팝 느낌의 노래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 목소리만으로 앨범을 구성한다는 점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보다 많은 사람이 ‘백현은 이런 목소리를 갖고 있구나’ 정도만 알아줘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좋은 결과를 얻어서 다행이다.
좋은 결과란 뭘 말하나?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내가 표현하고 싶었던 목소리와 느낌을, 내가 노력한 만큼 알아채주는 분들이 있었다. 팬들 덕분에 앨범 판매량도 좋았고.
어떤 목소리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약간은 몽롱하면서(웃음), 목소리 자체만으로도 섹시한 느낌을 담고 싶었달까?
처음엔 타이틀곡 제목이 ‘ UN Village’라길래 좀 의아했다, 한마디로 ‘삼성 래미안’의 고급 버전인 셈이니까(웃음). 그런데 듣고 볼수록 그 ‘고급’이 여러모로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 같 았다. 무대에서도 너무 각 잡지 않고 힘을 뺀 퍼포먼스, 그런 여유로운 멋을 내고 싶었나 보다. 오, 정확하다. EXO는 각이 잡히고 파워풀한 무대를 보여주기 때문에 솔로일 때는 좀 다른 모습이고 싶었다. 센 것보다는 힘을 뺀, 좀 더 내 목소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내 무기라고 생각하는 것을 꺼내려고 했다.
힘을 뺀다는 게 웬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오히려 어려운 일이다. 첫 솔로는 백현이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중 어느 것의 집합에 가까웠나? 처음엔 좋아하는 것에 맞췄다가, 연습하고 연구하면서 점점 잘하는 것으로 옮겨간 것 같다. 나는 늘 그런 식이다. 잘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한다. 처음부터 잘 했던 건 거의 없다. ‘이거 너무 어려워, 하지만 좋아’로 시작해서 어느 순간 익히고 마스터하는 때 굉장히 짜릿하다.
새삼스럽지만, 당신처럼 보컬 포지션으로 출발해서 역동적인 안무까지 소화해내는 춤꾼으로 무대에 나타나는 가수를 보면 여전히 신기하다. SM이 워낙 독보적인 트레이닝 시스템을 갖춘 회사여서 그런지, 실은 그 사람에게 춤의 DNA가 있었는데 단지 끌어낼 기회가 없었던 것인지. 자기 몸과 근육을 쓸 줄 아느냐의 측면에서, 나는 DNA의 영향도 있다고 본다. 가슴을 돌리는 동작 하나에도 여러 부분 동작이 이어진다. 예를 들어 ‘오른쪽 어깨가 올라가고 그다음 가슴이 나오고, 다시 오른쪽 어깨가 내려가면서 왼쪽 어깨가 올라간다’는 이 세밀한 움직임을 뜻대로 조절하기 힘든 사람도 있다. 거기에 더해 안무가를 비롯해서 워낙 고퀄리티를 구사하는 사람이 많은 SM의 환경도 내 발전에 한몫했다. 주변을 보면서 덩달아 눈높이가 올라가고, 배울 점도, 자극받을 부분도 많았다.
곧 있으면 EXO 데뷔 8주년을 맞는 시점이니까 역사가 시작된 그때 얘기 좀 해볼까? 보컬이지만 어려운 춤도 소화해야 했던 처음, 마음이 어땠나? 그냥 이런 욕심이 좀 들었다. ‘춤을 못 추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다행히 팀에 늦게 합류한 나와 첸을 위해서 멤버들이 새벽까지 가르쳐주곤 했다. 카이는 첸을, 세훈이는 나를 맡았지. 누가 더 잘 가르쳤는지, 더 잘 익혔는지 대결도 하면서. 같이 연습하는 동안 많이 성장했다.
돌이켜보면 데뷔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고 느낀 결정적 시 기가 있나? 2016년 여름 ‘Monster’ 전후로 퍼포먼스 실력이 확실히 늘었다. 안무가인 심재원 형이 그 곡 초반에 내 독무를 넣어줬다. 원래 독무까지는 아니었는데, 형이 ‘백현이 너도 춤에 소질이 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될 거다, 지금 자신감을 키워보자’ 하면서 독무를 짜고 격려했다. 그때부터 ‘내가 춤을 못 추는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독무를 해내면서 몸으로 표현하는 일에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미처 몰랐거나 억눌려 있던 게 자유롭게 표출되기 시작한 듯하다.
오, 그즈음이 바로 <더블유>와 ‘EXOclusive’라는 스페셜 커버 화보를 작업했을 때다! 음악적으로 슬럼프를 겪은 시기도 있을까? EXO 활동 초기인 ‘MAMA’에서 ‘늑대와 미녀’로 넘어갈 때. 데뷔가 현실로 이뤄지면서 갑자기 큰 관심을 받으니까, 그렇게 자신감 넘쳤던 아이가 노래하는 일이 무서워졌다. 내 노래가 이상할까봐 스스로 의심하고. 발성에 대한 관심을 그즈음부터 본격적으로 갖고, 공부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면서 라이브 하는 와중에도 내 소리가 어떻게 나올지 예상이 되더라.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 변화를 주기도 하고, 어느 곡에서 마음에 들었던 나의 톤이 있으면 이후 다른 곡에 일부 적용하기도 하는 식으로 노력했다.
그럼 EXO 이전, 자신에게 재능 비슷한 게 있다고 처음 어렴풋이 느낀 때는 언제인가? 태어나서 처음 노래방에 갔을 때. 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무슨 곡을 불렀을까? 얀(Yarn)의 노래였다. 그 곡이 뭐였더라… 잠깐 검색 좀 해도 될까?
얀이라면 수많은 남자들을 노래방에서 고꾸라지게 만든 고음력 판독기 중 하나인데. 그러게 말이다. 얀의 ‘Run’. 이상하게도 이 노래를, 그냥 들어서 알던 대로 자연스럽게 불렀을 뿐인데 친구들 반응이 엄청났다. 그때부터 ‘엇? 노래를 배운 것도 아닌데 다들 잘한다고 하네? 이게 나의 큰 장기구나!’ 하면서 노래 하는 걸 좋아하게 됐다.
마이크에 음향 시설에 관객의 호응까지 있었으니, 연예인 탄생의 순간이다. 그렇게 ‘부천 프린스’의 역사가 시작됐구나(웃음). 친구들은 어떤 노래는 음이 높다고 안 부르고 그랬다. 그럼 나는 ‘응? 왜?’ 싶었다. 그때는 어려서 비브라토가 뭔지도 모르니까 그냥 음을 ‘떨기’라고 생각했는데, 음의 끝처리를 떠는 식으로 하지 않는 걸 들을 때면 ‘왜 떨기를 안 하지? 좀 밋밋하지 않나?’ 이러고. ‘자뻑’하던 어린 시절이었지(웃음).
백현의 보컬 특색을 스스로 소개하자면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음. 부드러우면서 단단한 느낌.
좋은 건 다 갖췄네… 흐흐, 내가 완전 미성은 아니지만 중저음 보이스이면서 부드러움도 배어 있는 쪽인 듯하다. 그래서 한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두루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그래도 탐이 나는 누군가의 보컬이 있나? 김범수 선배님. 내가 요즘 보컬 재정비를 하는 시기다. 호흡법부터 발성이며 모든 걸 다 뜯어고치고 있다. 그래서 보컬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김범수 선배님의 노래를 들어보면 상당히 안정감을 느낀다. 안정감이라는 건 듣는 사람도 편안히 듣고 즐길 수 있고, 노래 부르는 사람도 플레이어로서 뽐내고 싶다거나 이렇게 저렇게 표현하고 싶은 바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님은 그 안정감이 뛰어나면서 목소리도 좋고, 여러 가지 소리를 갖고 계신다. 본받을 점이 아주 많다.
보컬의 포인트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스타일을 바꾸는 일, 힘든 과정일 텐데. 쉽지 않다. 지금의 보컬 선생님에게 배운 지 1년 정도 됐는데, 다행히 나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다. 가수 임한별 형이 소개해줬다. 보컬 스킬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심적으로 안정시켜주시기도 하면서 내가 어떤 게 불편한 지 종합적으로 진찰하는 의사 선생님 같다. 진짜 어른이다.
SuperM의 일원으로서는 어떤 포부를 품고 있나? 작년 가을에 활동을 개시하고서 아시아 가수 데뷔 앨범으로는 최초로 빌보드 200 정상에 올랐다. 미국에서 인터뷰할 때 ‘또 다른 K–Pop을 보여드리겠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거기에는 액면 그대로의 말 외에 다른 의미도 있다. 어떻게 보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이 현실로 일어나는 시대 아닌가? SuperM이라는 팀도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그룹의 멤버가 모여서 또 하나의 그룹을 결성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시스템이다. 우리는 그런 시도를 막 시작해, 그 안에서 서로 시너지를 일으키고 있는 단계다. 그 점을 바탕으로 K–Pop을 더욱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2000년대에 SMTOWN이 해외 투어를 하면서 K–Pop이라는 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최근 몇 년간 K–Pop의 위상이 또 한 번 도약한 분위기다. 투어를 하면서 그런 걸 느낄 때가 있나? 물론이다. 해외 인터뷰를 하다 보면 기자님들이 ‘K–Pop을 정의할 때 칼군무가 빠질 수 없잖아요?’ 같은 말을 한다. 예전부터 있던 군무라는 스타일을 보다 명확하게 만든 게 K–Pop의 중요한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이 바로 그 점을 알고 짚어줄 때면 뿌듯하고 감사하다.
SuperM은 EXO의 백현과 카이, 샤이니의 태민, NCT의 태용과 마크, WayV의 루카스와 텐이 뭉친 팀이다. 같이 있으면 어떤 분위기인가? 정말, 진짜, 아주 착하고 순수한 아이들이다. 무대 위에서는 돌변하는데 무대 아래서 애들끼리 있는 모습 보면 어쩜 그렇게 순수한지. 나는 우리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보여드리겠다는 것 이전에 애들의 그런 면을 막 알리고 싶어.
무대에서는 ‘여긴 우릴 태울 스테이지’ 이러면서 눈빛 이글거리는 상남자 같다가 뒤에서는 순수한 소년들 같고 그런가? 이 사람들도 좋은 건 다 갖췄네… 슈퍼히어로가 평소에는 자기 본분을 숨기고 순한 면모를 보이다가 밤이 되면 나쁜 사람들 혼내 주고 그러는 거, 어릴 때부터 왠지 그런 게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했다(웃음). 평상시 모습과 무대에서 집중할 때 모습, 그 양면성이 잘 알려진다면 멤버들 모두가 더 빛날 것 같다.
오늘 화보 촬영 때도 맑고 깨끗한 백현, 다크한 카리스마가 있는 백현으로 상반된 모습을 오갔다. 그리고 ‘빛’을 상징하는 EXO 백현답게 까르띠에의 주얼리가 빛났지(웃음). 당신이 가진 양면성이 있다면 뭘까? 착하고 예의 바른 편이지만, ‘이게 아니다’ 싶을 때는 단호하게 구는 돌직구 스타일이다. 단호함은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누군가 옳지 못하게 대할 때도 나타난다. 그럴 때면 내가 나서서 말을 한다.
이야기를 쭉 들어보면, 당신은 스스로 동기를 부여해내는 사람 같다. 그렇다. 내가 내 단점을 계속 찾는다. 무대에서든 사람들을 대할 때든 내 문제점이 없었는지 자주 생각한다. ‘요즘 왜 이렇게 틀린 동작을 할까’ ‘집중을 못했나, 아니면 부분 동작 연습이 부족했나’ 같은 질문을 자꾸 하면서.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하여 아티스트로 오래, 지속 가능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건 뭘까? 일단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찾는 일이 관건인 것 같다. 그 과정 없이 유행이나 남들 분위기를 따라가게 되면, 그저 그런 아티스트로 남기 쉬울 것이다. 오래가는 이들을 보면 뭐가 됐든 자신의 색깔이 명확하다. 나도 곧 제2의 백현으로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내 목소리 만으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삶 말이다.
백현 안에는 얼마나 큰 욕망이 있을까? 욕망, 있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한다고(웃음). 하지만 이만큼 될 거야, 이런 목표를 꼭 이뤄야 해, 식으로 파이팅 넘치는 쪽은 아니다. 욕망이 커서 스스로를 잡아먹고 싶지도 않다. 웃으면서, 행복하게 하는 게 나에겐 가장 중요하다. 그 선에서 욕망이라고 한다면 ‘열심히 노력한 걸 알아봐주셨으면 좋겠다’ 정도? 노력한 일은 반드시 조금이라도 빛을 발하게 되더라. 그리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건 또 제대로 뽐내고 그러는 거지 뭐,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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