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재스민 공주, 나오미 스콧.
27년 전에 개봉해 그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린 작품으로 등극한 애니메이션 영화 <알라딘>이 실사 버전으로 돌아왔다. 2019년의 재스민 공주, 나오미 스콧(Naomi Scott)은 이제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배우가 되기 직전에 있다.
실사로 다시 태어난 영화 <알라딘>에서 재스민 공주를 연기한 스물여섯 살의 나오미 스콧(Naomi Scott)과 인터뷰를 시작하기 몇 분 전, 가이 리치로부터 만반의 준비를 하게 만드는 전화를 받았다. <록 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와 <스내치>, <셜록 홈즈>의 감독인 이 영국 남자와 <알라딘>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어쨌든 디즈니의 전설을 이어갈 감독으로 낙점된 그는 평소에 누군가를 크게 칭찬하는 타입이 아니다. 그런 가이 리치가 나오미 스콧에 대해서는 좋은 말을 대거 쏟아냈다. “나오미는 관대함과 재능을 발산하는 데 있어서 원자로 같아요. 자연스러운 카리스마가 은하계를 넘나드는 수준이라니까요.” ‘실제로 만난 나오미 스콧의 매력이 단지 행성 간에만 머무는 정도면 어쩌지?’라고 우려한 것도 잠시, 웨스트 할리우드 레스토랑에 나타난 나오미 스콧의 진중하고 밝은 기운은 웨이터와 호스티스, 그리고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는 아이의 눈길까지 사로잡았다. 인도의 피가 흐르는 영국인이자 독실한 크리스천, 축구선수의 아내, 자기 뮤직비디오까지 있는 데다 영국 래퍼와 또 다른 음악 프로젝트를 준비 중인 다재다능한 배우. 그녀는 스스로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전 오만 가지 것들을 섞어놓은 그 무엇이죠.”
나오미 스콧은 할리우드 신성으로 떠오르며 올 하반기에 개봉할 <미녀 삼총사>의 새 시리즈에도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함께 출연했는데, 연기가 과연 천직일지 아직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다.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알라딘>의 재스민 공주는 현실에서는 절대 공주가 아니라는 것. 런던에서 <알라딘>의 첫 오디션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나오미는 치밀하게 전략을 짜야 했다. 자칭 톰보이인 그녀의 옷장에는 공주 근처에라도 어울릴 법한 의상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옥스퍼드 거리의 톱숍 매장에 들러 하늘색 꽃무늬 드레스를 하나 샀다. “그후로 다시는 입지 않았죠.” 많은 대본 리딩과 미팅과, 거리의 부랑자에서 왕자가 되는 연기를 하는 알라딘 역할의 메나 마수드를 상대로 한 스크린 테스트 이후, 전 세계를 대상으로 재스민 공주를 찾던 캐스팅 여정이 종지부를 찍었다. 지니 역할에는 윌 스미스가 일찍부터 낙점돼 있었다. “첫 리허설 현장에 나갈 때 저는 나이키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어요. ‘이게 진짜 나야, 하하, 속았지?’라고 하는 기분이었죠.”
나오미와 영화 제작자들은 애니메이션 버전에서 다소 평면적 인물이었던 재스민의 캐릭터 개발에 많은 시간을 들였다. 1992년에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한다며 전통을 거스르는 주장을 한 재스민. 2019년, 나오미는 자신의 ‘보스 레이디’ 성향에 살을 붙이기도 하면서 좀 더 인간적인 캐릭터로 재스민을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과거 애니메이션과 달리 실사 <알라딘>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내용 중, 재스민이 왕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악당 자파와 맞서는 대목이 있다. “그 플롯은 디즈니와 가이 리치가 재스민 캐릭터로부터 원하는 바가 일치했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어요. 그 내용이 절 정말 신나게 했죠. ‘난 이 역을 꼭 따낼 거야’ 라고 다짐하게 만들었어요.”
가이 리치는 런던에서 나오미를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그는 그녀가 수년간 가수로 활동하며 자작곡 앨범을 세 개나 낸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녀가 <알라딘>의 유명한 주제곡인 ‘A Whole New World’를 꽤 훌륭하게 소화할 수 있겠다고 눈치챘다. 신작 <알라딘>의 사운드트랙엔 과거 사운드트랙에 두 개의 새로운 곡이 더 실린다. 그중 하나가 재스민의 솔로곡 ‘Speechless’다. “더 이상은 침묵만 하지 않을 거라는 재스민의 선언이죠.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그게 요즘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고요. 변화의 기폭제가 되는 것. ‘당신이 말한다면, 나도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메시지 말이에요.”
나오미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서 노래를 불렀다. 10대 시절에는 공상과학 시리즈인 <테라 노바>와 디즈니의 TV 영화 <레모네이드 마우스>에 출연하기도 했다(<알라딘> 이전까지, 그녀가 가장 큰 역할을 한 작품은 2017년 <파워 레인저>다). 일찍부터 노래와 연기를 시작한 셈인데, 그녀는 노래와 작곡이 그녀의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음반업계에서 성공하는 것. “저는 틈새를 노리는 예술가가 아니에요. 타이밍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상업적으로 전환할 수 있는 요소가 저에게 있다고 봐요.” 나오미는 메리 메리와 커크 프랭클린 같은 가스펠 팝 가수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머지않아 낼 앨범에 교회 성가대를 백업 코러스로 둔 음악을 적어도 한 곡은 넣을 생각이다. 최근에는 R&B에 푹 빠져 있다. 작년에 발매한 싱글에서는 옳지 못한 것들에 현혹되어 잃어버린 사랑에 대해 한탄하면서, 이런 노랫말을 읊었다. ‘잔디는 더 파랗지 않다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나요? LA는 더는 달콤하지 않아요. 몽상가들로만 가득 차 있죠.’
나오미의 부모님은 런던 외곽에 위치한 교회의 목회자다. 어머니의 가족은 인도에서 우간다로 이주했다가 최종적으로 영국에 자리 잡았고, 아버지는 영국인이다. “사람들이 ‘목사의 자녀’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것을 떠올릴 거라고 생각해요.”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가 생각하는 기독교 신앙은 여느 고정관념에 비하면 덜 엄격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많은 질문들에 열린 마음을 갖는 거예요. 저는 확실히 ‘질문자’랍니다. 누군가가 내 질문을 차단하면, 굴하지 않고 더 많은 질문을 하죠. ‘음, 질문을 막는 행위는 좀 이상하지 않나?’ 하면서요.” 나오미는 남편인 축구선수 조던 스펜스(입스위치 타운 소속)를 16세 때 교회에서 만났다. 2014년 부부가 된 이들은 음악 프로젝트 팀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함께 제작하고 감독해서 곧 발표할 래퍼 닉 브루어의 비디오 작업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나오미에게 작품 제안이 많이 들어오면서, 부부는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 3년 전, 새로운 <미녀 삼총사> 시리즈의 감독 직을 수락한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파워 레인저> 세트장에서 나오미를 보고서는 3명의 엔젤로 불리는 미녀 삼총사 중 하나인 엘레나 역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미녀 삼총사> 제작진은 나오미가 <알라딘>의 주인공으로 낙점된 사실을 모른 채 캐스팅 작업에 들어갔다.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그 무렵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캐스팅 팀에서 ‘흠, 나오미 스콧이 <알라딘>을 한대요. 그럼 안녕!’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다 <미녀 삼총사>의 추진이 조금씩 늦춰지고 <알라딘>과 제작 일정이 겹치지 않게 되면서, 결국 나오미가 합류할 수 있었다. 다행히 나오미는 이번엔 궁전 생활을 잘 아는 공주처럼 보일 필요가 없었다. 물론 엘리자베스 뱅크스 감독은 ‘전형적인 여성’을 찾고 있었다. 관객들이 ‘저 사람이 찰리의 엔젤이라면, 나도 엔젤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친근한 옆집 소녀 말이다. 촬영을 시작한 후 엘리자베스 뱅크스는 베테랑 코믹 배우들도 당황할 수 있는 즉흥적 장면을 포함해 자신이 던지는 거의 모든 미션을 나오미가 소화하는 걸 지켜봤다. 그녀는 나오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앞으로 다양한 폭의 나오미 스콧을 보게 될 거예요. 2019년은 그녀에게 정말이지 엄청난 해가 될 겁니다.”
나오미가 LA와 런던 시내를 돌아다닐 때면 아직 그녀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지만, 그녀는 안타깝게도 스타덤에 필히 수반되는 무자비한 현상을 체험하는 중이다. <알라딘>의 전체 출연진이 발표되자마자 트위터에서는 나오미 스콧의 출신 배경이 중동 지역이 아닌 사실에 대해 통탄하는 유저들의 저격이 시작됐다(영화의 배경은 ‘아그라바’라는 가상의 도시이지만, 천일야화에서 비롯된 원작에서는 배경이 바그다드였다). 나오미는 그런 반응들에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 혼혈 인종으로서 그녀는 ‘당신은 너무 백인 같다’거나 혹은 그와 반대로 ‘당신은 충분히 백인이 아니다’라는 취급에 무척 익숙하다. “저는 그저 제 캐릭터에 책임을 지면 돼요.” 다만 소셜미디어 활동으로 남들을 즐겁게 하는 쪽을 즐기는 그녀도 비난 댓글이나 익명의 악플러를 무시하는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다. “어렵더군요. 내적 장치 같은 것을 통해 스스로를 단단하게 훈련시켜야 해요.” 다시, 엘리자베스 뱅크스 감독이 말한 몇 년 전의 나오미 스콧을 떠올려본다. 20대 초반에 이미 기혼이었던 나오미는 다른 젊은 배우들과 다른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뿜었고, 그녀에겐 침착하고 안정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이런 특성을, 정작 나오미 본인만 잘 모른다. “저는 진행 중인 작업물과 같아요. 제가 일을 망치거나 잘못된 말을 할 소지가 다분하죠. 지금은 그저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저로서 제 일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지켜보고자 합니다.”
- 피처 에디터
- 권은경
- 글
- CHRISTOPHER BAGLEY
- 포토그래퍼
- ALASDAIR McLELL AN
- 스타일리스트
- Sara Moonves
- 헤어
- James Pecis for Oribe(@ Bryant Artists)
- 메이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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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 Jachno for Chanel Le Vernis(@ Art Depart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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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lin Donahue(@ Owl and the Elepha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