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옷장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할아버지 옷장이라는 말은 좀처럼 들어보지 못했다.
기능적인 옷들을 경이로운 방식으로 재해석하는 천재적인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가 지난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가 기억난다. 그의 인스타그램이 동묘 거리를 거니는 서울의 할아버지들의 사진으로 가득 채워졌기 때문이다. 불가리아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옷을 만드는 창작의 원천이 공장에서 일하던 부모님의 작업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형형색색의 아노락 점퍼라던가 피케 셔츠, 카고 팬츠를 겹쳐 입은 서울의 할아버지들이 그에게 얼마나 근사하게 보였을 지를 말이다!
일본과 서울, 파리와 런던을 가리지 않고 할아버지들의 옷차림을 인스타그램에 계속해서 포스팅하는 것들은 이제 비단 키코 코스타디노브만의 일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도 탐낼 만한 끝내주는 스타일을 가진 거리 위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촬영해 올리는 전문 계정까지 생겨나고 있으니 말이다.
1 @bringdownthewhips
2 @gramparents
3 @virgilabloh
말쑥한 수트 차림에 활기찬 색의 야구 모자를 걸치거나 주머니가 수 없이 달린 아노락 점퍼를 두르는 모습이 흡사 요즘 유행하는 ‘고프 코어(Gorpcore)’차림 같아 흥미롭다. 무엇보다 가장 동시대적인 디자이너라 통용되는 버질 아블로 또한 몇 주 전 도쿄를 방문했을 때 그 도시의 할아버지들에게 흠뻑 빠진 듯 보이지 않았나! 남의 시선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기능성에만 충실해 멋대로 겹쳐 입는 할아버지들의 옷 입는 방식이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옷을 입는 방식과 같은 맥락에 놓인 듯 보인다.
- 프리랜스 에디터
- 김선영
- 사진
- @kikokostadinov @virgilabloh @bringdownthewhips @grampar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