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스톤과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하루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로 만난 배우 엠마 스톤과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희한한 화보 작업을 했다. ‘크레이지 도그 레이디’라고 불러도 좋을 어느 여인의 엉망진창 하루가 펼쳐진다.
화창한 어느 날,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오후. 한 여인이 주택 앞마당 잔디에 섰다. 여인은 자신이 키우는 15마리 개 중 5마리를 통제하려고 애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집에서도 오트 쿠튀르 의상을 입은 여인. 오늘은 볼륨감이 풍성한 꽃무늬 카프탄을 입었다. 빨간 머리는 볼록한 단발 형태로 정성스럽게 스타일링하고, 입술에는 밝은 오렌지색 립스틱을 발랐다. 갑자기 온갖 크기의 개들이 잘 관리된 잔디를 가로질러 뛰어 나가려고 한다. 다섯 개의 목줄이 팽팽하게 여인을 잡아당기는 탓에 손목의 뱅글들이 찰랑거리고, 옷자락은 휘날렸다. 하지만 여인은 절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다. “오, 나의 아가들!” 짖어대는 퍼그를 안아 들며 여인이 다정하게 말했다. “난 우리 아이들 모두를 사랑해요. 악마처럼 굴 때도 말이죠.” 여인은 퍼그의 납작한 코에 입을 맞추고는 그를 형제들이 있는 잔디 위에 부드럽게 내려놓았다. “자, 나의 작은 것들아, 산책하러 가자.”
교외에서의 따분한 삶은 누구라도 미쳐버리게 할 수 있다. 이 여인도 그럴지 모른다. 화려한 여인과 개들로 구성된 가족은 지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Yorgos Lanthimos)의 상상력으로 태어났다. 화보 캐릭터에 완전히 몰입해 연기하는 여인은 엠마 스톤(Emma Stone)이다. “처음에는 박제된 동물을 사랑해서 집 안에 그것들을 가득 채우고 사는 여성의 모습을 떠올렸어요.” 개 무리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스톤을 쳐다보며 란티모스가 말했다. “이 콘셉트에 대해 스톤과 상의했는데, 실제로 그녀는 애견인이에요. 그래서 박제 동물이 아닌 진짜 동물에 대한 사랑으로 콘셉트를 바꿨죠. 진짜 개 15마리가 있는 집 말이에요.” 란티모스는 키가 크고 어리둥절해 보이며 헤아리기 어려운 눈빛을 가진 남자다. 그는 오늘 영화 촬영장이 아닌, 화보 촬영장에서 사진가로 분했다. 대화 중엔 다정하고 친근했지만, 태생적으로 말하기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과 세계관에 대해 장황하게 늘어놓기보다 수줍음을 탔고, 여러모로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영화 <송곳니>(2009)를 시작으로 <더 랍스터>(2015), <킬링 디어>(2017)로 이어지는 란티모스의 영화들은 잊히지 않고, 불편하며, 어이없게도 유머러스하다. 모국인 그리스에서 촬영한 <송곳니>가 요르고스 란티모스 작품 전체의 어조를 말해준다. 영화에 세 명의 성인 남매가 등장한다. 그들은 부모로 인해 고립되고 갇혀서 평생을 영원한 아동기 상태로 보낸다. 장성한 아이들은 위 송곳니가 빠지기 전에는 감옥에서 나갈 수 없다고 믿는다. 첫째 딸이 자신의 이를 무거운 덤벨로 후려치는 장면은 자유를 위한 소름 끼치는 선언이지만, 란티모스는 이것 또한 다소 웃기게 연출했다. 콜린 파렐과 레이철 와이즈 주연의 <더 랍스터>는 그의 첫 번째 영어 작품으로, 이 영화 또한 45일 내에 짝을 찾지 못하면 자신이 지정한 동물로 변하게 되는 세상을 가정한, 디스토피아적 코미디다. 무겁고 감정적인 장면에서도 캥거루나 염소가 저 뒤에서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 란티모스의 가장 서늘한 영화 <킬링 디어>는 악의 평범성에 대한 묵시록이다. 니콜 키드먼과 콜린 파렐이 열연한 이 심리 호러물에서는 모든 자극이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진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어둡지만 경쾌했다. 18세기 초 영국을 통치한 앤 여왕의 궁정 안에서 라이벌들이 벌이는 영리하고 복잡미묘한 암투.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말이에요.” 개들을 산책시키러 가던 여인이 그 중대한 의무를 잠시 미루고선 말했다. “이건 <이브의 모든 것> 같잖아? 라고 생각했죠.” 그녀는 하녀 일을 하러 앤 여왕의 궁궐로 입성하는, 몰락한 귀족 가문의 여인 아비게일 힐을 연기했다. 곧 그녀는 자신보다 훨씬 저명하고, 훨씬 더 자리 잡은 사촌(레이철 와이즈)과 병들고 어딘가 혼란스러운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의 사랑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이들은 품위 있는 겉모습을 유지한 채로 음모와 계략을 꾸미고, 권력과 패권을 다툰다. ‘Time’s Up’ 시대에 남자가 부차적 존재인 세계를 목격하는 건 황홀한 경험이었다.
스톤은 다음 촬영 장소인 집 안 거실에 들어서며 실내 장식을 모조리 흡수하는 듯, 혹은 체조 동작 중인 듯 희한한 포즈를 취했다. 20세기 중반의 여느 랜치 스타일 주택으로 꾸며진 집. 란티모스의 디렉팅에 따라 강아지, 그림, 장난감, 조각상, 베개 그리고 사진들이 집 곳곳을 채웠다. “저는 이 방이 가짜 개들로 완전히 채워지길 원했어요. 그러면 화보를 감상하는 독자들이 가짜와 진짜 개들을 헷갈려 할 테니까요.” 란티모스가 즐거워하며 말했다. “동물은 우리 삶의 일부죠. 제 영화에서 동물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우리와 동물과의 관계가 꽤 이상하다고도 생각해요. 예를 들자면 우리가 먹어도 괜찮은 동물이 있고,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는 동물이 있잖아요. 참 이상하죠. 동물을 둘러싼 이론들은 정말 흥미로워요.”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우리 모두는 개를 좋아하지요. 그런데 개를 15마리나 키우는 여자는 어떨까요? 그 점은 그녀의 인생에 대해 무엇을 말해줄까요?”
집 뒤편에서는 개들과 조련사들이 대기 중이었다. 커다란 아프간하운드가 현관에서 놀고 있었고, 갈색과 흰색이 섞인 오스트레일리아 셰퍼드는 피크닉 테이블 근처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으며, 요키는 여인의 품에 푹 안겨 있었다. “이 개 때문에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황갈색 불마스티프의 눈을 들여다보며 스톤이 말했다. 란티모스와 스톤이 촬영을 위해 함께 다양한 개들을 골랐지만, 란티모스는 애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이미지 연출을 위한 촬영 소품으로 더 관심을 갖는 듯했다. 그는 동물에게 과도한 사랑을 쏟는 것이 볼썽사납다고 느끼는 기색이었다. 관심이 자기에게 쏠릴 때도 비슷한 과묵함으로 반응했다. “편집 작업이 끝난 후에는 거의 영화를 다시 보지 않아요. <송곳니>가 찬사를 받았을 때, 저는 그 상찬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어요. 그냥 다시 일터로 돌아갔죠. 결국 제 영화들은 다소 불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가 엷은 미소를 지었다. “전 매혹적인 방식으로 뒤흔들기를 좋아해요.”
스톤은 개들과 운동하는 장면을 찍을 준비가 다 되었다. 촬영장에는 퍼그를 위한 러닝머신이 설치되고 있었고, 오스트레일리아 셰퍼드는 특정 자세를 취하도록 지도를 받는 중이었다. “이건 정말 웃길 거예요.” 란티모스가 외쳤다. 그가 말한 ‘웃기다’에는 ‘독특함, 흥미로움, 도발적임’의 의미가 다 섞여 있다. ‘웃기는 것’으로 향하는 것은 언제나 그의 연출 목표 중 하나다.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의 촬영 전 3주간 가진 리허설 기간 동안, 란티모스는 세 여배우가 게임 같은 활동에 참여하도록 했다. 예를 들어 서로를 향해 뒷걸음질로 걸어가며 등이 부딪치는지 보는 것 말이다. 팔을 꼬아서 ‘인간 프레츨’을 만들어보라는 요구도 했다. 그의 목적은, 오늘 엠마 스톤과 개들도 그런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자의식이나 자만심, 또는 ‘연기함’이라는 의식을 지우는 것이었다. 자연스러움에 대한 요구는 심지어 개들에게도 향했다. 촬영을 해보니 개들이 란티모스의 예상보다 너무나 프로페셔널하게 연기해서, 연기 같지 않을 필요가 있었다고. “개들이 이젠 좀 피곤한 것 같아요.” 러닝머신 위에서 헥헥거리는 퍼그를 보며 그가 말했다. “그래도 좋아요. 비현실적인 것들 속에서도 현실을 찾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 패션 에디터
- 권은경
- 글
- LYNN HIRSCHBERG
- 포토그래퍼
- YORGOS LANTHIM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