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기지 않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소설 같다’고 말하지만 지리멸렬하고 누추한 현실 속에서 살아내고 꿈꾸기 위해 소설은 더욱 필요하다. 그래서 더블유는 세 명의 젊은 작가에게 소설을 써 달라고 청했다. 아주 강렬해서 현실을 잊어버릴만큼 매력적이고, 몹시 얼얼해서 현실을 똑바로 마주보게 되는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제시어는 ‘닭’이었다.
치카
치카, 마이 치카.
밸런타인 씨는 저를 그렇게 부르곤 했습니다. 이름의 어원을 영어에서, 스페인어에서, 일본어에서, 한국어에서 찾을 수 있었는데, 그중 어디서 비롯했는지 궁금해하면서도 묻지 않았습니다. 밸런타인 씨가 과묵 모드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밸런타인 씨가 처음 저를 구매하셨을 때 가족 분들은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97세의 밸런타인 씨가 케어 로봇이 아닌 교감 로봇을 선택한 것은 분명 일반적인 결정이 아니었으니까요. 케어 로봇은 굉장히 강건한 다리를 가지고 있지요. 밸런타인 씨를 안아서 옮기고 목욕도 시켜드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교감 로봇은, 여러 가지 교감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지만 가장 인기 있는 용도는 섹스인지라 체위 변형이 쉽도록 최대한 가볍게 만들어집니다. 제 다리는 비어 있고 저는 밸런타인 씨를 안아 옮길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고통을 느끼는 건 교감 로봇뿐인걸.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진짜가 아니야.”
밸런타인 씨는 저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해주신 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 제한되는 종류의 교감이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적은 없지만요. 함께한 몇 년간 밸런타인 씨에게 팔베개를 해드리거나, 밸런타인 씨의 머리를 땋아드리거나, 함께 해변을 산책하는 것 이상의 교감은 없었습니다.
카우아이의 해변을 산책하다 보면 야생 닭이 많습니다.
“알고 있니, 치카? 이 닭들은 가축이었다가 가축에서 벗어났어. 유전자도 야생종에 더 가까워졌지. 생각해보면 아주 멋진 일이야.”
저는 머릿속으로 카우아이 야생 닭들에 대해 찾아보았습니다. 폴리네시아인들이 하와이에 이주해올 때 가축으로 함께 들어왔다가, 인구가 줄어들자 야생으로 돌아갔습니다. 최근에는 허리케인으로 망가진 축사에서 또 한 번의 대탈주가 있었지요. 이제 거의 야생종인 붉은멧닭에 가까워졌는데, 드문드문 섞여 있는 흰 깃털만이 가축이었던 과거의 흔적입니다.
밸런타인 씨와 함께 가끔 닭 요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야생 닭을 요리하진 않았습니다. 그건 불법입니다. 저는 혼자서 닭을 사러 갑니다. 무거운 짐을 들지 못해서 밸런타인 씨가 작은 수레를 사주셨습니다. 밸런타인 씨의 친조부모는 아일랜드인과 중국인, 외조부모는 하와이언과 한국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일랜드식 로스트 치킨, 중국식 레몬 치킨, 하와이식 훌리훌리 치킨, 한국식 양념통닭을 번갈아가며 만들었습니다. 요리가 끝날 즈음엔 밸런타인 씨의 자녀와 손자 손녀 분들이 도착했습니다. 엄마, 할머니, 하고 밸런타인 씨를 부르곤 했지요.
“너도 원하면 날 할머니라고 불러도 돼.”
모두가 돌아가고 난 후에 밸런타인 씨가 말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밸런타인 씨를 밸런타인 씨로 부르는 쪽이 교감이 더 잘되었습니다. 우리가 같은 침대에서 잠든다는 건 가족에겐 비밀이었습니다. 비록 제 잠은 흉내고, 언제까지고 저리지 않는 팔로 팔베개를 해드리는 것뿐이었지만요. 저는 학습을 하는 모델입니다. 효율성을 위해 기억을 다른 유닛들과 공유합니다. 다른 유닛들이 벽장이나 철망, 상자에 주로 보관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목을 졸라줄래?”
때로 너무 괴로운 순간이 오면 밸런타인 씨가 부탁했습니다. 저는 잠깐 밸런타인 씨의 목을 졸라주었습니다. 쾌감 질식 모드는 굉장히 안전하게 설정되어 있어 밸런타인 씨의 경우 40초 미만으로만 조를 수 있었습니다.
“치카, 네가 끝까지 할 수 있다면 난 정말 기쁠 텐데.”
스쳐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얼마 후, 밸런타인 씨 손녀의 친구의 친구가 우리를 방문했습니다. 그 사람은 제 쾌감 질식 모드 설정을 살짝 바꾸고 센서 몇 개를 꺼주었습니다.
“이거 불법인데요? 그리고 다음 업데이트 때엔 바로 복구될 거예요.”
미심쩍어했지만 밸런타인 씨가 비용을 후하게 치렀기 때문에 더는 다른 의견을 표하진 않았습니다.
업데이트 예정일 이틀 전 새벽, 밸런타인 씨가 부탁했습니다.
“베개로 얼굴을 눌러주지 않겠니?”
저는 베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이번엔 끝까지.”
그리고 몇 개의 지시사항이 더 있었습니다. 저는 끝까지 밸런타인 씨의 얼굴을 눌렀고, 그다음엔 섬유가 남아 있지 않게 밸런타인 씨의 콧속을 청소했으며, 사용하지 않는 벽장에 들어가 밸런타인 씨의 기상 시간까지 기다린 다음 구급차를 부르고 가족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밸런타인 씨가 유언장에 저에 대해 언급한 것을 전달받았습니다. 밸런타인 씨는 저에 대한 영원한 소유권을 주장하셨더군요. 아무도 저와 교감해서는 안 된다고요. 가족은 이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보관처는 카우아이의 별장이며, 별장 관리도 맡게 된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밸런타인 씨가 안 계시기 때문에 방문객이 적고, 저는 혼자 해변을 산책합니다. 주인이 없는 닭들을 구경합니다. 쾌감 질식 모드의 변경 사항은 업데이트 때 사라졌지만, 그전에 일부 정보를 다른 유닛들과 공유했습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목을 조를 수도 있고 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아주 멋진 일입니다.
글 |정세랑 <이만큼 가까이>, <보건교사 안은영>, <피프티 피플> 등 여섯 권의 장편 소설을 썼다.
안녕, 꾸꾸
어느 날 그녀는 이런 문장을 읽었다.
“사실 닭이라고 해서 모두 똑같지는 않아. 우리 눈에 모두 똑같아 보일 뿐, 실은 닭도 사람처럼 저마다 서로 다른 거야. 세상이 창조된 이래로 완전히 똑같은 두 피조물이 세상에 태어난 적은 없어.”1)
유대인 공동체 키부츠에 사는 모시라는 아이의 목소리였다. 허구의 인물인 그는 닭장 청소를 하며 평생 닭장에 갇혀 사는 닭들의 처지를 어림하고 채식주의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에 대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책장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병아리 한 마리가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서성였다. 누군가 놀이터에 버리고 간 것 같았다. 다가가 손으로 잡아 보니 뼈가 잡힐 만큼 앙상했다. 손으로 감싸 쥐었는데도 병아리는 미동이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 작은 몸에도 심장이 뛰어서 그 박동이 그녀의 손가락에 전해졌다.
“어차피 죽을 거야. 죽기 전이라도 데리고 있으렴.”
부모의 말에 그녀는 아파트 베란다에 종이 박스를 놓고 그곳에 병아리를 들였다. 밥풀을 놓으니 그것을 쪼아 먹었고, 밥을 다 먹고는 박스에 기대어 잠을 잤다. 그녀는 병아리를 꾸꾸라고 불렀다. 금방 죽으리라는 모두의 예상과는 달리 꾸꾸는 중닭이 됐고, 시간이 더 지나자 어엿한 암탉으로 자랐다. 자라나는 제 모습이 자랑스럽기라도 한 것처럼 날갯죽지를 쭉 펴기도 하고 뒤뚱뒤뚱 베란다를 걸어 다녔다. 부리로 물을 마시는 모습이며, 그녀가 베란다에 가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그녀 눈에는 몹시 귀여웠다. 깔끔한 부모가 개와 고양이를 키우지 못하게 했으므로 꾸꾸는 그녀가 처음으로 함께 정을 붙인 동물이었던 셈이다.
완연한 닭이 되자마자 꾸꾸는 아버지 친척의 농장으로 보내졌다. 그때 그녀는 열 살이었고, 꾸꾸가 어디로 보내졌고,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어른들의 설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농장은 좋은 곳이라고 했다. 꾸꾸가 그곳에서 친구를 사귀게 되리라고 부모는 말했다. 꾸꾸가 떠나기 전날 밤, 그녀는 담요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꾸꾸를 한참이고 쓰다듬었다. 언제까지고 꾸꾸와 함께 지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었다. 꾸꾸가 가고 그녀는 몇 날을 울며 보냈다. 부모는 꾸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을 유난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꾸꾸에 대한 그녀의 애정을 농담거리로 삼았다. 닭에게 이름을 붙이고 항상 쓰다듬어줬다고, 그런 이유로 이제 닭고기도 먹지 않는다고. 대체 어떤 부분이 그렇게 웃긴 것인지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의 반응에 상처를 받느니 꾸꾸에 대한 이야기를 비밀로 부치는 편이 나으리라고 마음먹었다.
성인이 되고 술자리에서 치킨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물었다. 왜 닭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녀는 고기 알레르기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렇구나, 정도로 말하고 지나갔 다. 간편한 방식이었다. 선아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선아는 그녀가 대학교 4학년 때 같은 동아리에 들어온 새내기였다. 새내기였지만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사회생 활을 해서 그녀와 같은 나이였다.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아, 저는 고기를 먹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선아에게 사람들은 이유를 물었다. “어떻게 사육하는지 알고 나니 먹을 수가 없었거든요.” 선아는 심드렁하게 말했고, 맞은편에 앉은 그녀의 동기는 “난 다른 건 다 이해해도 채식주의는 이해 못하겠더라”고 맞받아쳤다. 선아는 그런 동기를 가만히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교양 수업을 단 둘이 듣게 되면서 그녀는 선아와 목요일 점심을 항상 같이 먹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선밴 닭이 몇 년 사는 줄 알아?” 선아가 물었다.
“글쎄…… 1년? 3년?”
“평균 15년 산대.”
“그렇구나.”
“성장 촉진제를 맞혀서 병아리들 뼈랑 살을 불리는 거래. 빠른 시간 내에 상품으로 만들려고.”
그녀는 선아에게서 빽빽한 사육장에서 길러지는 닭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닭으로 가득 찬 닭장에 대해서, 부리로 서로를 쪼아 값을 떨어뜨릴까봐 병아리들의 부리 끝을 잘라낸다는 말을. 그녀는 꾸꾸의 여린 부리를 문득 떠올렸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베란다를 걸어 다니던 귀여운 모습도.
“그런 걸 알고는 먹을 수가 없었던 것뿐인데. 그냥 내 선택이잖아, 선배. 나 하나 안 먹는다고 해서 뭐가 바뀌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알고도 먹을 수는 없었을 뿐이었어. 그런데도 욕 많이 먹었지.”
“나 사실 닭고기 알레르기 없는 거 알아?” 그녀는 선아에게 꾸꾸에 대해 말했다. ‘고작 닭 한 마리’를 애지중지했다고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의 알 수 없는 슬픔에 대해서. 선아는 그 이야기를 웃지 않고 들어준 최초의 사람이었다. 선아는 그녀에게 쿤데라와 쿳시의 책을 소개해주었고, 그녀는 책 속에서 그녀와 마음이 같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동물이 고기이기 전, 하나의 존중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생각은 다수의 생각과 달랐지만 그렇다고 틀린 것은 또 아니었다.
“동물이 신음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하소연이 아니라 작동 상태가 나쁜 장치의 삐걱거림에 불과한 것이다. 마차의 바퀴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면, 그것은 마차가 아픈 것이 아니라 기름칠이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의 신음 소리는 이런 식으로 해석돼야만 하고 실험실에서 산 채로 조각나는 개에 대해 눈물을 흘려서는 안 된다.” 2) 동물을 자동 인형, 움직이는 기계로 규정한 데카르트의 생각은 곧 다수의 생각이 되었다.
“튜랭의 한 호텔에서 나오는 니체. 그는 말과 그 말을 채찍으로 때리는 마부를 보았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마부가 보는 앞에서 말의 목을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니체는 말에게 다가가 데카르트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던 것이다.”3)
포클레인으로 땅을 파고 수천 수만 마리의 닭을 생매장하는 장면을 (그것이 비록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을지라도) 그녀는 볼 수 없었다. 최근에만 2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생매장되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그녀는 천만 마리가 넘어가는 닭의 무리를 상상하려 시도했지만 상상할 수 없었다. 너무나 큰 숫자였다. 말의 목을 껴안고 용서를 빌었던 니체와 대규모로 동물을 사육하고 살처분하는 인간들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데카르트의 자녀들일까.
인간이 다른 동물을 먹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공장식 축산 시스템은 그 어떤 부분도 자연스럽지 않다. 결국 도살당할 생명이라고 하더라도 살아 있는 한 최소한의 삶을 누려야 한다고 그녀는 믿었다. 그런 생각을 위선이라고 지적한다고 할지라도. 적어도 지금의 방식은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다.
‘살아 있는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을 바라.’
그녀는 꾸꾸에 대한 사랑을 더는 부끄럽게 기억하지 않는다.
글 | 최은영 <작가세계> 신인상, 젊은 작가상 등을 받았다. 지난해 소설집 <쇼코의 미소>를 냈다.
인용된 구절의 출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모스 오즈, ‘아버지’, <친구 사이>, 민은영 옮김, 문학동네, 2013. 2) 3)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이재룡 옮김, 민음사, 1999.
모르는 고기
목성에 가는 길에 싱가포르에 들렀다. 거기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비싼 로켓 연료를 소비하지 않고도 대기권 밖에 있는 장거리 우주공항에 직접 다다를 수 있어서 여행 비용이 많이 절감됐다. 물론 친구인 완진을 만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우주공항 주위에는 작은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완진은 바로 그곳에서 일했다.
완진은 영어가 모국어인 중국계 싱가포르인인데, 혹시 한국에서 가져갔으면 하는 물건이 없느냐고 묻자 간장게장을 부탁할 만큼 한국을 잘 알았다. “다른 건 여기서도 다 구할 수 있지만 그건 절대 구할 수가 없어서요.” 사실 좀 난감한 부탁이었다. 싱가포르처럼 법이 엄한 나라에 간장게장을 반입하라니. 하지만 나는 친구의 청을 받아들였다. 어디 숨기지도 못할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들고 궤도엘리베이터에 올랐다는 말이다. ‘이러다 걸리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창피만 당하고 마는 걸까, 아니면 지구로 돌려보내지는 걸까. 그럼 내 목성행 티켓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세관을 통과했다.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입국장 문이 열리자 완진이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걱정했어요? 괜찮아요. 물론 공식적으로는 안 되겠지만, 뭐 닭만 아니면.”
“닭만? 왜?”
“싱가포르에는 양계장밖에 없거든요. 돼지 농장도 없고 소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이 위도 그래요.”
일곱 번 우려낸 차만큼만 인공 중력이 작용하는 친구네 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완진은 내가 그런 부담스러운 부탁을 들어주면서까지 싱가포르 궤도엘리베이터를 경유한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네 집안 손맛으로 만든 치킨 커리와 재회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싱가포르는 향신료가 오가던 무역항이었다. 인도와 동남아와 중국의 맛이 오가던 곳. 그곳의 치킨 커리는 걸쭉한 북인도식이 아니라 국처럼 물이 많은 남인도식이었다. 된장찌개처럼 평범한 음식이다 보니 집집마다 맛이 다르다고도 했다. 향신료의 배합이나 재료 등이. 그래도 닭고기가 들어간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돼지나 소와는 달리 닭고기는 문화와 인종을 초월하는 고기였으니까. 그중에서도 완진네 치킨 커리는 보석 중의 보석이었다. 닭도리탕처럼 익숙하고 얼큰한, 하지만 전혀 한국적이지 않은, 오래된 국제 무역로의 기적.
“그리웠어, 이거.”
“언니 지금 울어요?”
“밥 더 있어?”
한국말이 많이 늘었다는 말도 해주지 못한 채 일단은 먹는 일에만 열중했다. 밥그릇을 거의 비웠을 무렵 완진이 문득 이상한 말을 꺼냈다. “여기 고기 완전 맛있지 않아요?”
나는 물론 대답할 틈이 없었다. 그러자 완진이 말을 이었다. “사람들은 처음 먹어보는 고기는 다 닭고기 맛이 난다고 한대요. 하긴 부리 달린 공룡이 새라니까, 최소한 악어랑은 비슷하겠죠.”
“에? 악어? 이건 누가 뭐래도 닭인데.”
“모르죠. 아래 싱가포르에서는 원래 무슨 요리든 다 닭다리에 붙어 있는 치킨 쓰는데 이 고기는 다리가 없잖아요.”
“가슴살 아냐?”
“그게, 생산자가 여기 우주정거장 축산협회거든요. 양계장에서 나왔다고는 하는데, 우주양계장이라는 거 들어본 적 있어요? 무중력에서 닭을 키울 수 있나? 그보다 여기 부동산이 얼마나 비싼데. 수상해요.”
“그 이야기를 왜 지금 해?”
“하하, 언니 표정 너무 진지해졌다. 농담이에요. 요즘 유행하는 도시 전설이라.”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언젠가 우주 식량으로 개발 중인 이런저런 동식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던 탓이다. 각국 우주축산협회의 실험적인 사육 이야기도.
모르는 고기라니.
다음 날 장거리 우주선을 타러 가기 전까지 온갖 이상한 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배운 게 많다 보니 상상의 폭도 무지하게 넓었다. 이건 무슨 기분일까. 끔찍함까지는 아니고, 꺼림칙함? 배신감? 호기심? 욕지기?
가벼워진 가방을 들고 기나긴 무중력 통로를 반쯤 날아서 이동했다. ‘어서 다른 걸 먹어서 덮어쓰기 하고 싶다.’
그렇게 광장 입구에 다다랐을 때였다. 앞서 가던 완진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거대한 구형 광장 한가운데에 있는 전광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거 보여요? 축산연구소 동물들이 탈출했다는데요.”
그 아래에는 포획 작전을 위해 경찰이 일부 지역의 교통을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네 개의 공식 언어로 표기되어 있었다. 영어, 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
“어디 통제한대?”
“어, 그게, 여기요. 큰일났네.”
그때였다. 어딘가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수십 마리의 새 떼가 3차원 무중력 광장 한가운데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위험한 걸까. 넋을 놓은 채 그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제복 입은 사람들의 포위망을 피해 우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무중력 치고는 대단히 날렵한 방향 전환이었다.
‘이쪽으로 오는 거야?’
나는 그만 당황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선 채, 다가오는 새를 똑바로 응시했다. 익숙한 발, 짧은 날개, 스톱모션처럼 절도 있게 움직이는 머리, 그리고 볏. 뭐 볏?
그것은 닭이었다. 하늘을 나는 닭. 싱가포르 우주축산협회의 위대한 승리!
‘아, 너도 날 수 있구나! 하긴 나도 여기서는 날 수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정말 굉장한 정부다!”
“와, 저도 저런 건 처음 봐요. 다리 봐. 진짜 새처럼 나는 자세네.”
1시간 뒤,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우주선에 앉아 완진네 치킨 커리를 마음껏 추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의심한 내가 바보지. 내가 바로 베드로였어. 다시는 배반하지 않으리. 아멘.’
글 | 배명훈 <타워> <안녕, 인공존재!> <첫숨> <예술과 중력가속도> 등 11 권의 소설, 소설집을 냈다.
- 에디터
- 황선우
- illustrator
- EOM YU JEONG
- 글
- 정세랑, 최은영, 배명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