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정과 강미나, 그리고 김나영이 <프로듀스 101>의 마지막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2016년 상반기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외에도 또 하나의 대국민 투표가 있었다. 지난 1월에 방영을 시작할 무렵만 해도 엠넷 <프로듀스 101>의 아이디어는 한국 국회의 몸싸움만큼이나 기괴해 보였다. 40여 곳의 연예기획사에서 온 101명의 연습생은 11인조 프로젝트 걸그룹 데뷔 기회를 놓고 전국의 ‘국민 프로듀서’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했다. TV를 콜로세움으로 삼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잔인한 오락이다.
잠깐의 짜릿함과 아쉬움은 겪었을지언정 셋은 현재의 상황이 승리도, 패배도 아님을 분명히 알고 있다. 프로그램은 끝났지만 이들은 이제야 겨우 출발선에서 몸을 풀기 시작한 거나 마찬가지다. <프로듀스 101>의 진행자였던 장근석은 4개월간 금요일 밤마다 “당신의 소녀에게 투표하라”면서 시청자들을 부추겼다. 하지만 김나영, 김세정, 그리고 강미나에게 더 중요한 목표는 누군가의 소녀 대신 스스로가 바라는 자신이 되는 것이다.
김 세 정|
최종 순위에서 2위를 차지한 뒤, 소감을 발표하다가 결국 눈물을 보였다. 약해 보이기 싫어서 방송에서는 최대한 안 울려고 노력을 했다. 그런데 그만 소속사 이야기를 하다 울컥해 버렸다. 같이 연습했던 언니들과 <프로듀스 101>에 함께 나와 고 생한 참가자들 생각이 마구 났다. 소감을 말하려고 마이크를 들었을 때만 해도 끝났다는 실감은 없었다. 그런데 회사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정말 끝이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그때 감정이 북받쳤던 것 같다.
댓글도 좀 찾아봤나? 아니면 일부러 피했나? 굉장히 많이 본다. 그런데 한번은 댓글에 크게 상처받아서 위축된 적이 있다. 방송 인터뷰에서도 한 이야기인데, 이런 걸 김치에 있는 생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맛있게 먹다가 매운 걸 한번 씹으면 그 맛이 잊히지가 않는다. 하지만 꼭 필요한 재료니까 그 안에 들어 있는 거 아닌가. 이 역시 거쳐야 할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마지막 방송을 마친 뒤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생방송 때 엄마가 보러 오셨다. ‘픽 미’를 부르려고 대형을 갖춰 섰는데, 무대 맨 앞 줄에 앉아 계시는 거다. 직접 인사도 못 나누고 입 모양으로만 짧은 대화를 했다. 순위 발표식 때 미나의 이름이 가장 먼저 불렸는 데, 얼핏보니까 그때부터 엄마는 이미 울고 계셨다. 나도 따라 울 것 같아서 계속 딴 곳만 바라봤다. 마지막 소감을 말할 때 가족 이야긴 일부러 뺐다. 정신이 없기도 했고, 괜히 그쪽으로만 초점을 맞추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다 끝내고 나니까 슬그머니 마음에 걸리는 거다. 그래도 마지막 무대였는데 엄마가 섭섭해하 진 않을까 싶었다. 그때 엄마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내 마음은 이미 충분히 알고 있다고, 잘 했다고 하셨다. 늘 내 속을 먼저 헤아려주신다.
음악을 하고 싶다고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언제부터였나? 초등학생 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문집에 적은 적이 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동창이 그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린 모양이다. 덕분에 나도 새삼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부터 막연한 꿈을 품었던 셈이다. 할머니께서 귀가 많이 안 좋으셔서 트로트를 들으실 때는 볼륨을 잔뜩 높이신다. 그 영향으로 어릴 때 장윤정 선배님 노래를 많이 따라 불렀다. 그 때문인지 당시에는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었다. 이후 수년이 지났고, 중1 때쯤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시작됐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밤마다 아무도 없는 운동 장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다. 한번은 경찰이 오기도 했다. 주민 신고를 받았다고 하셨다.
방송 중에 가족에게 보낸 메시지가 화제였다. “앞으로 꽃길만 걷게 해드리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갓 스물을 넘긴 사람이 사용할 어휘는 아니지 않나? 원래 화법이 또래보다 성숙한 편일까? 으하하, 내가 어렸을 때부터 시 쓰는 걸 좋아했다. 그러면서 비유에 집착하고 어휘도 노숙해지고… 사실 말투도 좀 그렇다. 나도 알고 있다. 뭔가 말을 하면 어른들도 흠칫하고 처음 만난 친구들은 당황하기도 한다. 그래도 철이 없는 것보다는 점잖은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말하려고 늘 신경을 쓴다.
밝은 모습을 좋아하는 팬이 많다. 원래 긍정적인 편인가, 아니면 긍정적이 되려고 노력하는 편인가? 원래 긍정적이긴 했다. 엄마가 굉장히 긍정적인 분이라 그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연습생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아무래도 막막하고 우울한 순간에 종종 부딪친다.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면 노력도 필요하겠구나, 생각하게 됐다.
강 미 나|
최종 11인 안에 들 수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나? 자신의 이름이 불렸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 전혀 예상 못했다. 마지막이니까 다같이 근사한 무대 하고 기분좋게 집에 가야지, 속으로 생각하던 중이었다. 내가 호명됐을 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만 눈물이 터졌다. 정말 엄청 울었다.
지난 몇 개월 사이 많은 팬이 생겼다. 특히 기억에 남는 누군가가 있을까? 방송 시작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하트 모양 편지지에 빼곡하게 글을 써서 보내주신 분이 있다. 너무 신기하고 감사했기 때문에 기억을 한다.
댄스 부문 현장 투표에서 전체 1위를 했을 때였다. 소감을 발표하다가 갑자기 살을 빼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다이어트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댄스 경연 전에 그룹 배틀 평가가 있었다. 화면을 모니터링한 뒤 스스로 충격을 받았다. 다음 경연 때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말을 하다가 또 울컥해서 울어버렸다.
가수의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 초등학교 4학년 때 TV를 처음 봤다. 음악 방송에서 샤이니 선배님이 ‘줄리엣’을 부르고 계셨다. 그때 큰 충격을 받았다.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고, 연관 검색어를 통해 소녀시대 선배님, 원더걸스 선배님 등도 알게 됐다. 이후로 음악 방송만은 열심히 챙겨 봤다. 그 무렵 소녀시대를 롤모델로 가수를 꿈꾸기 시작한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기 전에는 집에 TV가 없었나? 있었는데 보지는 않았다. 부모님께서 TV를 안 좋아하셨고, 나도 별 관심이 없었다. 한 번이라도 볼 기회가 있었다면 달랐을 거다. 아예 모르니까 딱히 호기심도 안 생겼다.
<프로듀스 101>에 참가한 젤리피쉬의 연습생 가운데 막내다. 언니들의 존재가 큰 의지가 됐을 것 같다. 맞다. 힘든 부분이 있으 면 뭐든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다이어트 때문에 고생을 했는데, 그때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
촬영 기간 동안 즐거운 일도, 힘든 일도 많았을 거다.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 댄스 무대 때 입은 바디 체인이 자꾸 끊어져서 애를 먹었다. 새벽부터 대기하며 리허설을 할 때 수십 번을 꿰매고, 옷핀도 있는 대로 꽂았다. 결국 스타일리스트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나야, 본 무대에서 안 끊어지면 내가 맛있는 걸 사줄게.” 그런데 그 후로는 거짓말처럼 멀쩡했다. 다들 웃으면서 이랬다. “역시 맛있는 걸 사준다니까…”
김 나 영|
최종 11인에는 아깝게 들지 못했다. 최종 순위를 확인했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게다가 객석의 팬들이 “김나영 데뷔!”를 외치며 내내 응원을 하셨다. 자꾸 듣다 보니 솔깃해져서 ‘진짜 내가…?’ 슬그머니 기대를 하게 되더라.
<프로듀스 101>의 경우,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과 달리 경쟁자들 간의 날 선 긴장감이 없더라. 그보다는 연습생간의 연대감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낯설 때는 그나마 견제를 했다. “쟤 진짜 예쁘다. 회사가 어디래?” 이렇게 뒤에서 소곤대기도 했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지고 대화가 오고가다 보니 처지가 서로 너무 비슷한 거다. “연습생들은 다 똑같아.” 이 말을 다들 달고 지냈다.
미션곡인 ‘24시간’에 참여했던 구준엽은 한 라디오 쇼에서 탈락이 가장 아쉬운 후보로 김나영을 꼽기도 했다. 방송을 실시간으로 듣지는 못했다. 주위에서 여럿이 이야기를 전해줘서 알았다. 너무 감사했다. 다시 듣기를 했더니 ‘김나영’이라고 제 이름을 정확히 불러주시길래 또 울컥했다.
<프로듀스 101> 촬영에 얽힌 에피소드 가운데서는 어떤 게 가장 기억에 남나? 합숙 때 연습을 마치고 나면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1박 2일 묵는데 라면을 4개씩 가져오는 친구도 있었다. 연습이 끝나면 새벽 3시든 4시든, 이튿날 8시에 일어나야 하는데도 모여서 라면을 먹었다. ‘오늘 정말 힘들었다, 내일은 또 얼마나 힘들까’ 이런 투정도 그때 나누곤 했다.
젤리피쉬의 세 참가자 중 연장자다. 동생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감은 없었나? 처음으로 팀에서 맏언니가 되어봤다. 워낙 중요한 시점이다 보니 걱정이 많았다. 고민을 하면서 연장자로서의 역할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기는 하다. 다만 프로그램에서 동생들의 순위가 나보다 위였기 때문에 작아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자신감을 잃어서 ‘내가 과연 얘들을 이끌 만한 사람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특히 좋아하는 뮤지션을 꼽는다면? 원래는 팝을 즐겨 듣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유 선배님 음악을 듣고 나서 처음으로 나도 내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뭔가 확 와 닿는 느낌이었다. 작곡 책도 사고, 좀 더 파고드는 계기가 됐다.
<프로듀스 101> 당시 ‘복세편살녀’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검색까지 해봤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는 사람치고는 너무 치열한 직업을 택한 것 아닌가? 치열한 직업이라는 것도, 어쩌면 그 치열함을 평생 안고 가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건데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내 자신이 너무 불쌍할 것 같다. 이왕 하는 거 재미있게 하고 싶다. 흔들릴 때가 많지만 열심히 다잡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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